중국 대장정을 승리로 이끈 주더 장군의 옛집 | 윈난성 쿤밍

숙소에 짐을 맡기고 아침을 먹었다. 큰 길로 나오자마자 이런 식당이 보였다. 중국의 전형적인 少吃(샤오츠)음식점. 少吃가 써있으면 기본적으로 저렴하고, 우육면이나 교자만두 같은 아주 심플한 요리가 있다고 보면 된다.

취호공원 옆에 있어서 이름도 취이원(翠颐园). '颐'자는 턱이라는 뜻인데, 보양하다라는 뜻도 있다. 취호공원 옆의 보양하는 곳이란 뜻인 가보다. 이름 잘 지었네.

이름은 거창하지만 아주 저렴한 식당이다. 겉보기에 깨끗해보여서 들어갔다. 이런 곳에 은근히 맛있는 음식이 있다. 우육면을 시켰다. 중국에서 면요리를 주문하면 기본적으로 양이 엄청 많기 때문에 무조건 작은 걸 먹어야 한다. (특히 나는 적게 먹는 편이기도.) 윈난이니까 국수는 미씨엔(米线)으로 했다. 미씨엔은 윈난특색요리로, 쌀로 만드는 면이다. 베이징에 있을 때도 윈난 식당에 가서 즐겨먹었다.

비주얼 괜찮다. 맛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밥 먹고 나와서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는데 바로 앞에 朱德旧居(주덕구거; 주더 옛집)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어서 표지판이 가리키는 골목으로 들어갔다. 주더(朱德)는 중국 대장정을 승리로 이끈 가장 탁월한 군인이다. 대장정 당시에 전투로만 따지면 주더가 가장 탁월한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는데, 주더는 마오쩌둥을 만나고, 자신의 군권을 모두 넘기고 자신은 군인으로서의 역할에만 전념했다. 책에서만 봤던 주더의 옛집이 쿤밍에 있었다니!

전형적인 쓰허위안(四合院) 형태의 집이었는데, 그 위에 정원과 2층 짜리 집이 더 있었다. 두 집을 붙인 건지, 뒤의 2층 집은 나중에 따로 지은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ㅁ자 형태로 된 집이 四合院이다. 한국 전통가옥도 이런 형태의 집이 있긴 하지만 비율상 중국에 특히 더 많은 것 같다.

위병소라고 적혀 있는 방. 주더가 머물던 군 숙소를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꽤나 단촐하다.





일종의 거실 같은 거 아닐까 싶은데, 사합원 형태의 집에서 이 방이 정가운데 있었고, 양쪽에 침실이 있었다. 근대 초기 중국 대륙 지식인들의 집이 대개 이러했다.

옛집 구경을 마치고 오른쪽을 보면 계단이 보인다. 이곳으로 올라가면 주더박물관이 나온다.


2층으로 되어있는데, 윗층은 사무실 같은 공간이고, 아래층은 전시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전시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곧바로 흉상을 마주하게 된다. 예전에 주더의 사진을 본 적 있는데, 묵직하고 단단한 인상, 작은 키가 기억에 남는다.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 무산계급 혁명가, 정치가, 그리고 군사가인 주더는 중국공산당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중국인민해방군 창건자 중 한 명이며... (구구절절)"

주더는 원래 쓰촨성 출신이라고. 그런데 어릴 때 윈난으로 와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혼란스러운 민국 시기에 쓰촨성이 전쟁에 휘말린데 반해 이곳 쿤밍은 이런 전쟁들을 피할 수 있었다. 당시 여러 대학들이 전황을 피해 이주해오면서 연합대학을 구성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식 청년들이 혼돈을 피해 이주해오는 변방 도시였던 셈이다. 읽으려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제대로 읽지 않았다.

주더에 대한 오래된 책들.

옛날 책들은 표지가 참 심플해서 좋다. 주더가 했던 말이나 남긴 글들을 모아놓은 선집이다.


갈수록 지저분해지는 표지. 주더를 가까운 곳에서 목격하고 교류했던 인물들이 남긴 주더에 대한 기록들이다. 그만큼 전설적인 인물이었던 셈.

어머니에 대한 주더의 회상을 남겨놓고 있다. “위대한 인물의 뒤에는 더 위대한 어머니가 있다”는 그런 전형적인 스토리텔링…



박물관 안의 디스플레이가 꽤 섬세하게 잘 되어 있다. 현대중국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고, 여전히 유명한 사람이라서 신경 많이 쓴 것 같다.

이 정도면 거의 조형 작품이다. 국민당 군대가 (인민해방군 입장에서) 거의 살아있는 나쁜놈들처럼 생생하게 묘사돼 있었다.

마오쩌둥과 주더의 명의가 적힌 "중국인민해방군 포고"
내용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군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대중들과 군 내부에 공포하는 공개적인 입장으로 보인다.

“1911년 윈난 강무학당을 졸업했다. 1915년 베이양군벌 토벌에 공을 세우고, 호국군 제13혼성여단장이 됐다. 1921년 쿤밍 경찰청장을 지내고, 1922년 베를린에서 저우언라이의 도움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했다.
1926년 귀국하여1927년 윈난 군관학교장 겸 공안국장을 지내면서 저우언라이·허룽 등과 함께 반군을 조직했다. 1928년 다시 중국공농홍군 제4군을 조직, 30년 중국공농홍군 총사령 겸 제1방면군 총사령, 1932년 중화소비에트 임시정부 군사인민위원장을 역임했으며, 1934년 장정에 참가했다. 1937년 국공합작 후 제8로군을 총지휘하고, 1947년 인민해방군 총사령이 됐다.
1949년 중국공산당정권 수립 후에는 1954년 국가부주석 겸 국방위원회 부주석, 1956년 당 제8기 중앙위원, 중국공산당 중앙위 부주석, 정치국 상임위원을 거쳐 1969년 당 제9∼10기 중앙위원, 중앙정치국위원 및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며 저우언라이와 함께 마오쩌둥을 도와 신중국건설에 공헌했다.”
네이버 사전 중


유격대 전술이 마오쩌둥의 것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은 이를 개발하고 수많은 전투에서 직접적으로 진두지휘에 승리로 이끈 것은 주더였다. 저서 중에 《중국공산당의 유격전술》(1945)도 있다고 한다.


결론까지! 결론에서 최근 중국 정세의 맥락까지 담은 점이 인상적이다. 내용이야 어쨌든 박물관 스토리텔링을 촘촘하게 구성했고, 관리도 잘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현대사 인물을 이렇게 충실히 기억하는 공간이 있을까?
국내에는 주더 개인에 대해 소개한 책이 출간되어 있지 않다. 나중에 《중국의 붉은 별》이나 다시 읽어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