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서 윈난성 쿤밍까지 44시간 기차 타기

베이징에서 윈난성 쿤밍까지 44시간 기차 타기

여행을 떠났다. 지금도 나는 여행 중이고, 모두가 뜨겁다는 이 여름을 아주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한편으로는 더위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용케도 이리저리 피해다닌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겨울 엄청 추울 땐 열흘동안 베트남 여행을 갔었으니 말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순히 많이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고마운 사람들과 며칠씩 여행을 함께 다니면서 (꼴에)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나름의 보답을 하고, 한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며 쉬고, 공부도 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36일이나 되는 아주 긴 기간이긴 하지만, 별로 부지런히 다니진 않을 생각이다. 어느 날은 이곳저곳 돌아다니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넋놓고 책이나 읽는 시간도 많을 것 같다. 그러니 이 36일 간의 여행 기록에 다른 여행 블로거들이 제공하는 알찬 정보 같은 건 별로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없는 이야기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쿤밍이나 청두에서의 서점 투어라든지?

이번 여행에서 나는 윈난성, 쓰촨성, 구이저우성 등 중국 서남부지역의 3개 성을 오고간다. 각 성이 한국보다 크기도 하고, 혹은 한반도 전체보다 크기도 하니, 3개국 여행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편견상 이 세곳은 비슷비슷할 것 같지만 기후도, 풍경도 꽤 다른 점이 많은 지역들이다.

베이징에서 5개월을 보낸 나는, 지난 7월 27일 기차에 올랐다. 쿤밍 직행 Z 기차였는데 무려 34시간을 달리는 여정이었다. K 기차의 경우엔 44시간에 달하니 그보단 좀 낫다고 할 수 있지만, 34시간도 쉽지 않긴 하다. 27일 밤 9시에 베이징서부역에서 기차에 올랐고, 29일 아침 7시까지 무려 2박 3일을 기차 안에서만 보냈다.

중국의 전형적인 3층 침대 열차였는데, Z기차는 그래도 K보다 새 열차라서 전반적으로 깨끗한 느낌이 있다. (속도도 좀 더 빠르다.) 원래 내 자린 2층(中铺)이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자기 자리가 아이들과 떨어지게 돼서 바꿔달라고 부탁하셔서 옆옆 열차칸에 있는 그 분의 3층 침대(上铺)로 바꿔드렸다. 20위안을 더 주셨고, 젓가락도 빌려주셨다.ㅎㅎ 중국 기차를 탈 때는 이렇게 자리가 어떻게 배정될지 모르기 때문에 타고난 후에 서로 부탁해서 바꾸는 경우가 왕왕 있다.

34시간은 길고도 길었다. 게다가 내가 있는 칸 사람들은 다들 혼자서 온 조용한 여자분들이었는데, 말 걸기도 좀 민망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34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주구장창 책만 읽었던 것 같다. 최근에 한국에서 출간된 《사상의 분단》이라는 책인데 긴 시간 기차를 타고 읽기엔 정말 좋은 책이었다. 내용이 쉽지 않아서, 아주 천천히 곱씹으며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올려볼까 한다.

연광석, <사상의 분단>, 나름북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났다. 차창 밖으로 두 번의 밤을 봤고, 무수히 펼쳐진 들판과 수백개의 마을과 도시들을 봤다. 중국은 참으로 광대하고 끝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몇 번 했고, 두 번의 아침 해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고나니 기차는 어느덧 윈난성에 다다르고 있었다. 윈난성은 중국 서남부에 위치한 곳으로, 항상 가고 싶던 곳이었다. 이번 여행에서는 쿤밍, 다리, 리장에 갈 예정이었는데, 이 세 도시가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가는 곳이다. 리장은 <신서유기>라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여러 여행 프로그램들에서도 소개된 바 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내다본 풍경

중국은 기본적으로 성 하나가 우리나라보다 넓은 경우가 많다. 윈난성도 티벳이나 신장만큼은 아니지만, 엄청 크다. 면적이 394,000km²으로 한국의 4배이고, 남북을 합친 한반도 면적의 거의 2배에 달한다. 인구도 2017년 기준 4800만 5천 명이라고 하니, 5100만 명인 남한이랑 거의 비슷하다. 그냥 한 나라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윈난성엔 중국 정부에서 인정하는 56개의 민족 중 무려 25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바이족, 좡족(티베트족), 리족, 나시족 등등 엄청 다양하다고 한다. 하지만 여행객들이 겉으로 봤을 때 알아보기는 쉽지 않겠지만 어쨌든 다리에 가면 바이족이 있고, 리장에 가면 나시족이 있다는 점 정도만 알고 떠났다. 샹그릴라에 가면 좡족이 있다고 하는데, 딱히 엄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쿤밍역 플랫폼
쿤밍역

마침내 쿤밍역에 도착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20분 정도 더 딜레이돼서 7시반에야 도착! 하지만 역을 나오니 기분이 너무 좋았다. 뭔가 도시의 분위기도 베이징과는 확실히 달랐다. 시안이나 상하이와도 또 달랐다. 날씨가 달랐기 때문일까? 날씨 예보를 보니 최저 17도, 최고 21도. 여름 날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 이 정도를 기록하고 있으니, 이상 기후가 지구를 뒤덮고 있는 요즘, 윈난성만큼 살기 좋은 곳이 있을까 싶다.

실은 이곳 쿤밍역은 4년 전 엄청난 사건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2014년 3월, 중국공산당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함께 치뤄지는 것)가 있었을 때, 이곳 쿤밍역에서 10여 명의 위구르족 독립인사들이 무차별 칼부림을 벌였었다고 한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아서 사건의 맥락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당시 29명이 사망했고 130여 명이 부상했으니, 중국 내에선 아주 큰 사건이었다. 위구르족 테러리스트(또는 독립운동가)들이 윈난 까지 와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의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이런 테러로는 결코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기 어려울 뿐더러, 성공하기도 어렵다. 오늘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지지와 미디어 아니던가.

쿤밍역을 나오자마자

아침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어우... 역 밖으로 나오니 그래도 역시 중국! 호객꾼들, 여행객들, 장사꾼들 등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인파를 뚫고 바로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캐리어 바퀴가 고장나서 정말 힘들게 끌고 갔다. 2번 버스에 올라 요금 2元을 냈다. 적어도 부모님이 청두로 오시는 8월 20일까지는 택시를 거의 타지 않을 생각이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니면 도시의 원래 분위기가 이런지 모르겠지만 창 밖의 쿤밍 시내는 꽤 한적해보였다. 하늘은 맑고, 공기는 맑았다.

쿤밍시내 2번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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