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전투
하루종일 지리멸렬한 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은 정말이지 치열하고 험난한 난투극, 거대한 판돈이 걸린 하나의 개싸움도박, 보이지 않는 총알들이 난무하는 피투성이의 총격전과도 같다. 고요함 속에서 공기를 뚫고 무수한 총알들이 지나간다.
나는 아무도 오지 않는 도서실 안 쾌쾌한 테이블 앞에 앉아 책을 펼치고, 책과 책 속의 글씨들을 노려본다.
그러면 어느덧 목마름을 느끼고, 옥수수수염차 껍데기에 담아온 정수기의 냉수를 한모금 들이킨다.
고요함 속에서 시간은 거짓말처럼 흐르고, 100페이지, 200페이지씩 책장이 넘어간다.
그리고 한참후, 조금씩 졸음이 몰려온다.
지난밤에 3,4시간밖에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밤에는 대학가요제의 매력에 훔뻑 빠져있었고 새벽엔 상황근무를 섰다.)
그러면 나는 px로 달려가 250원짜리 싸구려 캔커피 한잔을 사서 마신다.
그리고 다시 전투를 시작한다.
이러다보면 책이 나를 집어삼킬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사로잡힌다.
식은 땀이 줄줄 흐르고, 오한때문에 신은 양말은 덥게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한발 후퇴해서 활동복 윗도리를 벗는다.
이내 재채기가 터져나온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 코감기를 달고 살기 때문이다. 방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잠시, 조심스럽게 책을 덮고 화장실로 가서 코를 푼다.
마치 책을 잠시라도 놓아두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어느덧 세 시간여가 흐른다.
책장은 어느덧 종결부를 향해 흐르고 있다.
식사집합 15분전.
남은 페이지는 20여페이지…
나는 마지막 남은 집중력을 총력 발휘하여 책장을 모두 덮고 식사집합으로 달려간다.
휴. 이렇게 하나의 전투가 끝났다.
밥을 먹으며 다음 전투를 예비한다. 관물대에는 아직 제임스 조이스의 다른 소설들이 깊숙히 꽂힌채 세계 최고의 적수인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책들을 집어든다. 책을 지배할 것인가, 책에 지배당할 것인가.
아무렴 어때. 이 스타일 안 사는 오래되고 고지식하며, 방황하는 수도사들이 가득한 싸구려 수도원같은 곳에서 보이지 않는 파시스트대왕과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이거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