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 시간
두달여째 줄곳 천주교 미사에 가고 있다. 휴가 나갔을때 두 번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남원에 있는 쌍교동 성당엘 간다. 미사 시간이 되면 성당 안이 가득차고, 앉아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니, 미사 시간이기에 소리는 없다. 조용히 자리가 메워지고, 성당 안의 공기나 뜨거워진다.
강복 시간에 신부님은 윤리의 회복에 대해서 주구장창 부르짖는다. 낙태나 이혼 같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윤리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윤리적 비판도 가해지는데, 이것은 사회과학적인 내용의 경제학 비판이나 정치 비판이라기보다는 대체로 물질만능이 판을 치는 사회분위기가 만들어진데에 대한 개탄이 주를 이룬다. 신부님의 이런 강복을 전라도 남원의 나이든, 조용한 신자들은 가만히 앉아서 묵묵히 듣고, "아멘"하고 기도를 드린다. 그/녀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각각의 기도 속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성당의 미사 시간에는 이런 정도의 사회적 환기가 이루어지고, 또 신앙적 고백이 이루어진다.
미사가 거의 끝날 즈음이면 한 명, 한 명 순번이 된 신자가 교단 오른편의 마이크 앞에 서서 자신의 기도 제목으로 기도를 왼다. 오늘 어떤 목소리가 굵고 청명한 중년 남성은,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시다."라는 말로 자신의 기도를 시작했다. 이런 기도는 내 귀를 쫑끗하고 세우게 한다. 2009년 겨울처럼 각박한 공기가 온세계를 가득채우는 억압적 시간의 세계에서, 공공의 공간에서 이런 이타적 주문이 방송되는 것은 남다른 기운을 돌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기도 제목은 듣는 이에 따라 모두 다르겠지만, 내게는 남다른 울림을 남겨준다. 성당의 높다란 천정, 교회의 높은 벽에 위치한 긴 창문을 채운 스테인드글라스의 고갱풍의 원색 그림들, 차가운 공간을 가득 채우는 스피커의 울림, 그리고 2층의 성가대 연단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청아한 목소리의 한 여성이 부르는 고음의 성가. ---그녀는 동방박사의 순례에 대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가슴의 울림을 느낀다.
좌석 사이사이로 사람들이 지나간다. 후덕한 주름살을 지닌 강인한 눈동자, 짙은 눈썹의 수녀, 까만 눈동자로 표정없는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는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도 당당하게 아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70대의 쭈그렁 할머니, 그리고 언젠가 종로3가 거리에서 알몸이 되어 붙들려 끌려간 비두와 너무 닮은듯한 젊은 이주 남성, 두꺼운 외투를 입고 가슴에 찬 차가운 바람을 쏟아뱉으며 입장하는 할아버지들…
미사가 끝나고 복음을 알리라는 신부님의 말. 그리고 신자들은 복음성가를 부르고 성당 밖으로 조용한 발걸음을 옮긴다. 빼곡히 찬 사람들이 질서있게, 발걸음을 양보하며 성당 밖 공터로 나온다. 그리고 정확히 51년 된 마리아 성상 앞에서 작별의 기도를 올린다. 성당 문 오른편 기둥 입석에는 "1958"이라는 증축년도가 크게, 고딕체로 박혀있다. 시골 성당이 지나온 51년간의 고요한 역사가 내게 전해져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