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고난 후에, 변덕스럽게 찾아온 거센 빗줄기로 가득찬 창문 밖 세상을 보면서, 잠시 읽고 있던 책을 덮어두고 생각할 것이다. 아. 이제 내일이면 가는구나. 집으로. 꿈에도 그리고 그리던 세상 밖으로. 그때가 되면, 그때가 되면… 나는 나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르고 또 흘러, 서른살이 되고, 중학교 졸업 이후로, 매번 탈주와 탈출, 중퇴 인생이었던 젊음을 마감하고, 13년여만에 맞는 졸업식날. 되먹지도 않은 총장의 엘리트주의 졸업 축사를 들으며 생각하겠지. 시간이 지났구나. 시간이… 정지해버린 것만 같은 세상에서 나만 홀로 남겨놓은 것만 같던 그 잔인한 시간이… 그때 나는 온갖 좌절과 괴로움, 자기혐오로부터 벗어나서 결국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시간은 또 이렇게 흘러간다. 남원에도 한달여만에 비가 내렸다. 가을은 가고, 겨울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