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덕화와 이연걸의 전쟁 스펙타클 영화 <명장>

<명장>, 원제는 투명장(投名狀)
진가신 감독,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주연
2007, 중국, 127min.

원제는 투명장(投名狀)이다. 투항할 投, 이름 名, 문서 狀으로 중국에서 의형제를 맺어 서로 죽는 그날까지 한 몸이 되어 형제를 죽인 자는 죽이고, 배신한 형제는 죽인다는 맹세를 하는 서약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원제인 the warlords는 '지방의 군벌들', '군벌들의 시대'정도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이 영화가 배경으로 하는 '태평천국시대'의 중국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규정인 듯 하다. 그러나 사실 중국의 '전쟁사', 또는 역사 자체가 지방군벌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5호10국시대, 위촉오 삼국시대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큰 전쟁이 일어났던 어느 한 순간도 지방군벌이 없었던 때가 없었으니까. 군벌의 역사가 곧 전쟁사를 뜻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영화는 의리나 시대보다는 주되게 '전쟁'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다분히 '반전'의 메세지를 강하게 전하는 영화이고, 그 톤은 뚜렷하다. 전쟁이 가져오는 참혹한 죽음들에 대해 비주얼적으로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죽음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전쟁의 죽음들을 실제로 목격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죽음 그 자체를 아무 스탠스 없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느 홍콩무협영화나 전쟁영화들과는 다르다. 이는 유덕화의 전작 <묵공>(중국, 2006, 유덕화, 안성기, 최시연 등 출연)을 떠올리게 하는데 두 작품으로 인해 중년 이후 유덕화의 주된 화두가 반전이 된 것 같다는 확실한 인상을 준다.

때는 청나라 말기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날 때다. 전국 곳곳에 지방 군벌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황제와 서태후의 권위가 추락하는 즈음. 전쟁이 일어났고 의형제를 맺은 셋은 마을의 형제들은 화적패이었지만, 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청나라 군대에 투항하여 이연걸을 대장으로 한 청나라 군대가 된다.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지만 계속되는 전쟁 중에 혈육과 같던 마을의 '형제들'이 죽는다. 점점 의문을 가지면서도 큰형인 이연걸의 말대로 大를 위해 小를 희생하는 것에의 길을 따라간다. 하지만 참혹한 죽음은 계속 될 뿐이다.
셋의 연이 끊어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는 '소주성'에서의 전투이다. 소주성에 있던 지방군벌이 유덕화와의 담판 이후 항복하고 그 휘하의 병사들도 살려주는 조건으로 항복하지만, 이연걸을 이들 모두를 외성 한 곳으로 몰아넣어 몰살시킨다. 남은 병량이 10일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명목이 있었고, 가슴 아픈 결단이었지만 둘째인 유덕화는 전쟁 자체에 대해 회의하고 살아남은 마을 형제들에게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한다. 전쟁에 참전한지 5년째 되었을때였다.

결국 셋은 파국의 결말을 낳는다. 무사히 남경까지 와서 평화로운 날을 맞이했지만, 권력에 눈이 먼 이연걸이 유덕화를 암살한 것이다. 막내 금성무는 이연걸을 죽이러 그가 고위대관직에 취임하는 그날 그를 쫓아가지만 무술로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미 다른 늙은 고위관료들에 의해 암살이 예정되어있던 이연걸은 총 수십발에 맞아 죽고만다. 눈물을 흘리고 후회하면서.
전쟁은 세 형제를 비극으로 몰고 갔다. 세 형제 사이에는 여지없이 한 여인이 있다. 유덕화의 부인이며, 이연걸의 정부. 그녀는 세 형제의 비극을 파국으로 몰고가는 한 원인이 되지만 서브플롯에 불과하고 감정을 더 배가시키는 정도의 효과를 만드는데 불과하다. 마지막에 금성무가 그녀를 죽이는 것은 좀 억지스럽다. 중국 무협영화의 한계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세 배우의 연기중 유덕화의 연기가 가장 인상깊고, 겉멋을 싹 빼려고 노력한 이연걸의 변신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는 권력과 전쟁에 대해 신파적으로 회고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셋째인 금성무의 나레이션으로 영화 내러티브 곳곳의 빈틈을 메꾸고 설명해준다. 그의 감정이 중심이고, 다소 내러티브의 엉성함을 채우는 식의 느낌도 풍긴다.
중국 무협영화 특유의 스타일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할리우드 스펙타클적인 스타일을 따라가면서 전쟁에 대해 '비판'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점들이 있다. 우선 스펙타클 영웅서사의 시대는 끝났다는 점, 그리고 세계를 구원하는 황비홍같은 영웅 대신 비극의 주인공으로서의 영웅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 끝으로 최근 중국무협영화들의 이런 경향이 할리우드의 그것과 조금씩 일맥상통화되어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