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뉘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

영화는 평화롭게 시작된다. 라틴풍의 민속음악 같은 게 흘러나오면서 도시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이 보인다. 부뉘엘이 그려내고자하는 그 '모호한' 욕망은 아마도, 이 도시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루이스 부뉘엘의 영화 <욕망의 모호한 대상>을 보았다. 내가 알기로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처음에 그는 스페인 카탈로니아 지방에서 올라온 열혈 급진주의자인 카탈로니아 청년이었는데, 그가 젊은 시절에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초현실주의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는 영화 교과서의 세번째 장 쯤에 꼭 나오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갖는 마력과 영향력은 두 말하면 입아프고, 그의 '영화여행'(정말이지, '영화여행'이라 할만하다. 아주 종종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스페인에서 프랑스, 멕시코, 그리고 다시 프랑스로 옮겨다녀야 했던 부뉘엘의 삶.)에서 종착지점에 우뚝 서있는 영화이며, 필모에서 손꼽히는 걸작이기도 하다. 아주아주 예전에 봤었고 오늘 몇년만에 또 봤다. 전혀 새로운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돈이 무지하게 많은 어느 부르주아 남성이 자신의 집에 가정부로 왔던 여인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아니. 사랑인가? 그녀와의 동침을 욕망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런 욕망의 지점에 대해 조소를 보내는 영화이다. 남자가 여자의 몸에 대해 욕망하면 욕망할수록 그는 수렁에 빠지고, 여자는 도망간다. 여자가 끊임없이 도망가고 사라지는 여정과 남자가 그 간극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쫓아가고 갈망하며 납득불가능한 지점까지 자신이 소유한 물질들을 바치려드는 행위가 부르주아적 욕망의 기괴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욕망의 여정이 나중에 여자와 파국으로 헤어지게 된 이후에 기차에 오른 남자가, 같은 칸에 함께 탄 다른 승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플래시백으로서 보여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러니까 '말해지는' 모든 서사(스토리텔링)는 남성적 욕망의 시선에서 좌지우지되고 있는데 그게 다분히 남성의 시각에서 그려짐에도 불구하고 결국 영원한 실패의 지점으로 노정한다는게 재미있다.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모두들 남자에 대해 애처로운 감정을 갖고 여자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관객인 우리는 남자를 향해 조소를 보내는 감독의 시선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어떤 지점에서 갑자기 '작가'가 인입하는 느낌이 든다. 그게 뭘까?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나는 하도 이상해서, 여자의 화장법이 달라져서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인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지?,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영화 안에서는 완전히 단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하나의 역할을 두 명의 여자배우가 하고 있다.
두 배우는 캐롤 부케Carole Bouquet(위의 위 사진)와 안젤라 몰리나Angela Molina(바로 위 사진)이다. 두 배우가 갑작스레 교차하며 바뀌는 지점마다 어떤 충돌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지점마다 어떤 '조롱'같은게 느껴지는데, 마치 관객인 우리 역시 마찬가지로 조롱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남자에 대해서 측은하게 감정이입하던 우리가 같은 역할을 두 배우로 자꾸 바꿔대는 '감독'으로부터 조롱당한다는, 이중의 조롱이 조작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의 남자는 여자로부터 조롱당하고, 관객인 우리는 감독으로부터 조롱당하고. 이 두 가지 조롱이 기묘하게 중첩되어있다. 내 예상이 맞다면 이건 정말 형식적으로 탁월하다. 역시 부뉘엘!이라고 해야하는 건가? 그런데 하나 더 있다. 영화에 수미쌍관 식으로 등장하는 두 번의 조롱.

초반부에 우리는 스토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또 다른 부르주아 남자 한 명이 어떤 테러에 의해 자동차 폭발에 의해 죽는 걸 보게 된다. 어이없는 폭파장면이다. 이야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가, 그리고 그 사건이 왜 이렇게 난데없이 등장하는가? 게다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장엄한 스펙타클로 말이다. 이 폭발은 영화 말미에 한 번 더 등장한다. 두 남녀가 다시 재회했을때 파리의 어느 아케이드에서 일어나는 너무나도 갑작스런 폭발. 아무도 이 폭발에 대해 감지할 수 없다. 그저 그 전에 배경음악처럼 흘러나오던 라디오 뉴스의 테러리스트 관련 소식들이 전부일 뿐이다. 단 2초 만에 모든 게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갑자기 토라져서 가버리는 여자. 그런데................ 갑자기 폭발한다. 갑자기!

이렇게. 마치 상징계에서 실재계로, 어떤 넘어서는 안되는 경계선을 넘어서버릴때 갑작스레 증발해버리는 욕망의 언어처럼. 이건 진정한 조롱의 끝이다.
영화 초반부에 남자의 회상으로 플래시백이 이루어지기 전에, 남자가 여자에게 복수(?)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이상하게도 이 모든 이야기는 마치 남자의 복수에 대한 선행적 '복수'처럼 이루어진다. 그가 이미 '복수'하기 이전에, 그는 '복수'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