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과 출력 넘쳐흐르는가? 지난 80일간 30권에 가까운 책을 읽었다. 이 갑작스런 입력은 도무지 나의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일상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나는 틈이 날때마다 책을 읽긴 했지만 오전부터 낮시간 대부분은 재미없는 문서들을 작성하고 또 고치는 일들로 가득채워져 있었고, 아무래도 나의 미래 인생, 민중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 분명한(!) 것들에 대해
지난 한 달 전라북도에 온지 한달이 지났다. 전주에서 1주일 있었고, 남원에서 3주일이 지나갔다. 쫄따구 이므로 열심히 경례하고 열심히 청소하려고 노력중이다. 스물여섯이라는 나이가 군대에서 적응하기에 썩 좋은 조건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마음 속에서 걸리적거리는 무언가가 생기니 말이다. 그치만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야지. 한달동안 발터 벤야민 책 두 권과 소설책 아홉권을 읽었다.
온 몸으로 빨려들어오는 텍스트 텍스트가 온 몸으로 빨려들어옵니다. 어제까지는 발터 벤야민 전집 속의 사진와 영화에 대한 예리한 텍스트들이었다면, 오늘부터는 플로뵈르와 발자크의 수려한 문체들. 그리고 내일은 한국 현대문학의 지리멸렬하고 자멸해가는 이야기들. 내 손가락들이 텍스트 안에서, 그리고 텍스트 사이사이로 휘감아져 쉴새없이 움직입니다. 점호 후에 불이 모두 꺼진 막사 안에서 랜턴을 켜고 읽는 책들의 글씨들은 꿈틀꿈틀 살아서
플로뵈르의 소설 『마담 보봐리』 사실주의 문학의 기원으로 돌아가보았다. 플로뵈르, 발자크…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위대한 문학가들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우리는 문학이론에서 흔히 발자크 이후의 문학과 이전의 문학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발자크 시대의 사실주의 문학과 발자크 시대 이후의 리얼리즘 문학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구분들"은 무수한 논쟁과 이론을 낳기도 했다. 플로뵈르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