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책세상에서 나온 알베르 카뮈 전집 중 4권을 샀다. 그중 <이방인>을 제일 먼저 읽었다. 예전에, 20대 초반이었던 시절에, 영문판을 읽긴 했는데 거의 기억이 안나고, 거의 처음 읽는 맛으로 읽었다. 세상이 정해놓은 질서 안에는 결코 포섭될 수 없는 인간, 그가 이 소설의 화자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인칭 시점의 소설이 작가와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김붕구 옮김. / 지만지 이 두껍고 비싼 책을 사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작년 12월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슬럼프였고, 익숙한 조울증은 조금씩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구입한 앙드레 말로의 아시아 3연작 세권은 두껍고 부담스럽기 그지 없었다. 앙드레 말로는 입지전적 삶을 산 작가이다. 그런 그의 내력이 작가와 모험가, 정치가,
2008년 여름 독서 목록 19세기 프랑스에서는 귀스타프 플로뵈르의 <마담 보바리>와 다른 소설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희극 모든 번역본들, 기 드 모파상의 모든 단편소설들, 샤를 보들레르의 <파리와 우울>, <악의 꽃>, <벌거벗은 내 마음> 19세기 러시아에서는 푸쉬킨의 여러 소설들, 고골의 장편 소설 두 편과 희곡 <감찰관&
「가여운 노파들」, 샤를 보들레르 가여운 노파들 - 빅토르 위고에게 보들레르 Ⅰ 오래 된 도시의 꼬불꼬불한 주름 속에서 모든 것이 공포마저도, 매혹으로 변하는 곳에서 나는 살핀다, 나의 천성 어쩔 수 없어 늙어빠져도 매력적인 요상한 인간들을 저 쭈글쭈글한 괴물들도 옛날엔 여인들 에포닌느 아니면 라이스 같은! 꼬부라진 곱사등에 뒤틀린 괴물들일지언정, 저들을 사랑하자꾸나! 아직 영혼은 있으리니 닳아 구멍난 속치마를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으면서 든 생각 2008년 8월 6일 플로뵈르 소설 두권과 발자크의 인간희극 5권을 읽고는 그들로부터 드디어 "안녕을 고"하고, 어정쩡하게 스탕달의 소설을 읽고 있다. 19세기 프랑스 비판적 사실주의 문학의 종지부를 <적과 흑>으로 찍으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스탕달의 <적과 흑>은 <마담 보봐리>보다는 보다
발자크 소설 『골짜기의 백합』 어제 밤에는 유난히도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자꾸 나에 대한 혐오스러운 기억들이 떠올랐고, 죄책감에 몸둘 데를 몰라 자꾸만 침대 위를 뒤척였다.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고 있었는데, 소설 속의 인간군상들만큼이나 내 삶도 지리하고 혐오스러운데가 뒤덮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서 어디론가 응급전화를 해야했다. 하지만 어디로 해야할지 몰랐다.
플로뵈르의 소설 『마담 보봐리』 사실주의 문학의 기원으로 돌아가보았다. 플로뵈르, 발자크…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위대한 문학가들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우리는 문학이론에서 흔히 발자크 이후의 문학과 이전의 문학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발자크 시대의 사실주의 문학과 발자크 시대 이후의 리얼리즘 문학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구분들"은 무수한 논쟁과 이론을 낳기도 했다. 플로뵈르의 <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평생 문학에 문외한이었다가, 요즘들어 계속 문학 서적을 읽고 있다. 오늘은 <고도를 기다리며>와 베케트의 단편집인 <첫사랑>을 읽었다. 종로2가의 커피숍 "뎀셀브즈"에서. 부조리 문학의 정수라고 불리는 이 희곡본은 모종의 순환적 형식을 갖고 있다. 삶은 곧 부조리라는 실존주의적 철학에 기반해있으면서도 다소 미래파 문학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