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일은 점점 가까워져오니 이야기가 풀리지 않고 촬영일은 점점 가까워져오니 답답하고 조급해지고 내가 이렇게 빚 왕창 져서 만들 영화가 정말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되지만 그럴때마다 도처에 만연한 저 죽음들과 형언할 수 없는 슬픔들, 절규, 분노, 모든 히스테리, 신경증적 발작, 미치광이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의 쾡한 눈빛을 보려고 좀비시민처럼 거리를 헤맨다.
우리 시대의 비극론 졸업영화를 찍어야 한다. 잘 찍고싶다. 활동과 창작의 두가지 가지를 모두 잘 잡고서 미래에 대한 희미한 풍경을 엿보면서 졸업하고싶다. 영화 연출 전공이면서 꽤나 오랫동안 (2011년 3월 이후 계속) 영화만들기와 거리를 두고 학교를 다녔다. 거기에는 무수한 사연들이 있지만 여기선 굳이 얘기하지 않으려한다. 한눈팔고 산 건 아니다. 내가 당장 "좋은 영화"
스티븐 킹의 창작론 - 『유혹하는 글쓰기』 중 스티븐 킹에 따르면, 사실 세상에는 형편없는 글쟁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의 글에는 부사가 범람하고 목석처럼 죽어있는 인물들이 즐비하며, "지긋지긋한" 수동태 문장들이 우글거린다. 셰익스피어나 포크너, 예이츠나 버나드 쇼, 유도라 웰티 같은 위대한 작가들도 있지만 이런 천재들은 지극히 소수이다. 그는 좋은 글을 쓰려면 어휘력이나 문법, 문체의 요소들과 같은 기본적인 '연장'
창작에 대한 고민 무수히 되돌아보게 되는 창작에 대한 무수한 고민들. 그래서 별의별 창작론들을 다 접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임철규 교수의 <그리스 비극>, 제니퍼 밴 시즐의 <영화영상 스토리텔링100>, 마이클 티어노의 <스토리텔링의 비밀&
김탁환 장편소설 『노서아가비』 김탁환의 소설 <노서아가비>를 읽었다. 휴가 복귀하는 날 단방에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길지 않고 쉽게 읽히는 소설이다. 흥미진진하기도 하며, 김탁환은 스스로를 '소설노동자'라고 칭한다는데, 하루에 반드시 원고지 40매를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 불편함이 있다고 한다. 얼핏얼핏 소문만 들었던 그의 소설을 실제로 읽으니 그 '
민담 저녁에 홀로 반디앤루니스엘 갔다. 실은 <빈자의 미학>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역시 반디앤루니스에도 그 책의 재고는 없었다. 가끔 절판된 책은 어떤 대형서점 구석탱이에서 발견되기 마련인데 <빈자의 미학>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학교 도서관에 한 권이 있으나 대여가 허용되지 않는 책으로 지정되어있었다. 하릴없이 다른 책들이나 들춰보았다.
고 노무현의 스토리텔링 내가 그를 직접 본건 모두 세 번 정도였는데, 그 첫번째 기억은 2000년 5월 7일 대전에서 였다. 그때 그는 4월 13일에 있었던 총선에서 종로구라는 당선이 손쉬운 지역구를 버리고 부산에서 출마해 낙선한 직후였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갈등'문제를 스스로 안고 돌파하겠다는 이 무모한 결단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집결한
영웅 서사 알고 있다. 사람들은 영웅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떤 지독하게도 가장 희망적인 기운을 품고 태어났으나 태어나면서부터 지닌 운명의 지독한 장난질에 의해 여러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으며, 이 놈의 절망적인 세계에서 자라면서 온갖 좌절을 겪었고, 아버지 부재의 상태에서 자라기도 한, 그리고 결국 절망적인 청소년기에 극심한 방황을 겪다가, 결국 어떤 시기에 어떤 계기로 인해 큰
건조하고 부조리한 인간세계와 한 당나귀의 생애, 『당나귀 발타자르』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 프랑스, 1966 로베르 브레송 한 당나귀가 있다. 이름은 발타자르. 당나귀가 뭐라고 불려지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이 발타자르 였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영화 종반부까지는 대체 왜 이해하기 어려운 내러티브로 사건들간의 틈들이 보여지는지 알 수가 없다. 인물들의 감정도 따라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