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제가 본 서울> 사진전 도록 학교 도서관에 갔다가 사진집 몇 권을 빌렸는데 그 중 한 권이 <앗제가 본 서울>이었다. <자크 데리다의 시선의 권리>라는 책도 있었는데, 이 인상적인 책에 대해서는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앗제가 본 서울>은 사진사 초창기의 신화적 존재처럼 느껴지는 프랑스 사진작가 으젠 앗제의 정신,
마카오에서 말로를 만나다 군대에서 낙서 쓰듯 남긴 소설(?) 그날 밤 무작정 부서진 구멍으로 비집고 들어가 담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뭔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고 더 이상은 어쩔 수 없었다. 나로서는 순순하게 복종은 하더라도 절대 후퇴 같은 건 하지말자는 게 인생의 지론이었으므로 그 상황에서 다시 돌아갈
광화문광장, 정치공학과 스펙타클 광화문 서쪽 청운동에 사는 주민이다. 몇 년 전 차도를 광장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설레었었는지 모른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과 빌딩의 도시 서울에도 걸으면서 사색하고자 하는 시민들의 공간이 생겨가고 있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나는, 광화문광장의 키치적인 스펙타클을 보며 할 말을 잃고 절망하게 된다. 키치란 “속악한 것, 가짜 또는
서울에 나타난 부랑자 비로소 사람들이 공간으로서의 서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시선들은 '비로소' 본격화되었다. 이것은 몇년전 청계천 복개사업 논란으로부터 거슬러올라가며, 더 멀게는 청계고가도로를 무너뜨리고 동대문 근방의 옛 아파트들을 부수는 계획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에서 둔갑한 신자유주의의 여러 남매들 중 한 녀석이 자신을 도시계획으로 위장하려다가 청계고가도로를 무너뜨렸고, 아파트들을 무너뜨렸다. 이명박씨가 청계천을 되살리는 대공사를 결정했을때
100여 일만에 서울에 왔다 100여일만에 서울에 왔다. 엄마는 고독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택시비를 지불해주었다. 약속 시간이 늦었지만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난 이것을 모두 먹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꾸역꾸역, 말라 비뜰어진 밥숟갈 위에 냉장고 속에서 오래있던 멸치덩어리들과 눌러붙은 김들을 싸서, 천천히 씹어먹으며, 엄마의 말을 듣는다. 엄마는 가난한 목소리로 자신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전
TBNY의 Hey DJ를 들으며 이 노래의 이 부분에서는, 에코를 주는 것이나 카피 디지털사운드를 주는 것도 아니고 랩퍼가 스스로 "원인"이라는 단어를 네 번 반복하고, 또 "떠나기전에", "멈추기전에"라는 말의 첫 음소에 악센트를 주는 반복성을 부여한다. 디지털라이징된 음악을 바탕으로 한 노래에 이런 아날로그적인 '반응'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도쿄!』와 도시-공간 영화에서 공간은 또 하나의 캐릭터가 된다. 인물들의 관계, 서사과 어우러져 공간 그 자체의 성격과 감정을 갖고 프레임 안에 등장하는 것이다. 이는 영화가 왜 또 하나의 예술로서 취급될 수 있는 지를 설명해주는 주된 근거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공간이 갖는 구조, 성격에 대한 탐구는 대단히 중요하며, 서사 속에서 어떤 위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