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와 구원 한 당나귀가 있다. 이름은 발타자르. 당나귀가 뭐라고 불려지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그것의 이름이 발타자르라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영화의 내러티브적인 흐름이 이해하기 쉬운 편은 아니다. 사건들 간의 틈들이 잘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지고 생략되기 때문이다. 인물들의 감정도 따라갈 수 없다. 지극히 건조한 영상 위에서 영화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관객과 철저한
로베르 브레송의 <무셰뜨> 이 영화를 볼 당시에 나는 다른 수업(연출초급)에서 다르덴 형제의 영화 <로제타>에 대한 리뷰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 나는 <로제타>를 참 좋아하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영화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어떤 격정의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대처럼 현실과 몽상, 의지와 열패감과
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 <소매치기>에서 인물들은 특별한 표정 연기도 없이 ‘행위’와 ‘등장’으로서만 표면에 드러난다. 배우를 어떤 모델처럼 대하려 했던 로베르 브레송의 연출론 때문이다. 심리 대신 행동이 우선이며, 이는 브레송의 관심의 주제를 알게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미쉘은 소매치기이다. 초반부에 캐릭터에 대한 소개 없이 경마장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미쉘이
건조하고 부조리한 인간세계와 한 당나귀의 생애, 『당나귀 발타자르』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 프랑스, 1966 로베르 브레송 한 당나귀가 있다. 이름은 발타자르. 당나귀가 뭐라고 불려지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이 발타자르 였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영화 종반부까지는 대체 왜 이해하기 어려운 내러티브로 사건들간의 틈들이 보여지는지 알 수가 없다. 인물들의 감정도 따라갈 수 없다.
브레송의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 <어느 시골사제의 일기>Journal D'un Cure de Compagne 로베르 브레송. 1951년작 로베르 브레송은 현대 영화의 최고 거장이다. 그는 순수영화의 완전한 결정체를 이룩했고, 수많은 명감독들, 작가들이 그의 영화들을 자신들의 대작의 전범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 거역할 수 없는 클래식을 본다는 것은 아무래도 많이 부담스럽다. 나는 클래식을 있는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