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값 나에게 "글값"은 여전히 부끄러운 문제이다. 그래서 난 말하지 않고, 말한 적도 없다. 너무 실용주의적인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글을 쓰느냐 쓰지 않느냐의 문제는 다분히 필요한 글이냐 아니냐에 있을 뿐이고, 글의 값은 주는쪽이 풍족하냐 아니냐도 매우 중요한 기준이다. 얼마 전에는 원고료 대신 쌀을 보내주는 매체에 두 달에 한
존재하지 않는 Z 어쩌면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질문을 던져본다. 아니 이것은 확실히, 불멸의 질문이다. 언젠가 먼훗날에 사그라질테지만, 다시 무덤 속에서 스스로가 벌떡 일어나 무덤 속에서 저희들끼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령들처럼 되살아나 웅성거리며 주절거릴 질문들. 현재에 당도한 주체가 이미 Z의 완결된 행위들의 기억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정확히 바로 그 기억을 소환하는 그 순간, 존재하지 않는 것에
슬럼프 계속 슬럼프다. 왜 이럴까 계속 생각해봤는데, 이게 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때문인 것 같다. 미친듯이 읽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계속 침잠해들어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병영문학상에 응모한 소설이 입상했다. 국방부장관이 주는 냄새나는 기념패와 포상휴가를 받았다. 휴가나 가자.
자존심 나는 매일매일 자존심에 입은 상처의 벌어진 틈을 꿰메며 잠에 든다. 오늘은 어디에서였지? 그리고 몇 센티나 벌어졌지? 이 감옥같은 곳에서 하루하루 쳐박혀지낸다는 것은 어찌보면 참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우울증은, 말그대로 정신적인 것에의해 좌지우지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이런 기분이 들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나는 왜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보급판을 사서 읽고 있다. 500~600페이지씩 되는 책들이 스무권정도나 되는데 이렇게 엄청난 분량의 소설들을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러시아 문학자 석영중 교수에 따르면 도스토예프스키는 경제관념이 부족했고 가난했는데, 평생을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들 중에는 평론가들로부터 외면받은 범작들도 많다. 서사성은 거의
2008년 여름 독서 목록 19세기 프랑스에서는 귀스타프 플로뵈르의 <마담 보바리>와 다른 소설들, 오노레 드 발자크의 인간희극 모든 번역본들, 기 드 모파상의 모든 단편소설들, 샤를 보들레르의 <파리와 우울>, <악의 꽃>, <벌거벗은 내 마음> 19세기 러시아에서는 푸쉬킨의 여러 소설들, 고골의 장편 소설 두 편과 희곡 <감찰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