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ic

군대

A collection of 40 issues

감당할 수 없는 자유

오늘 다시 남원에서 서울로 왔다. 오늘은 새벽같이 나와서 초스피드로 달려왔더니 터미널에서 10시15분이었고, 집에 오니 11시였다. 이렇게 가까운 곳이었구나. 기분이 색달랐다. 그러나 어쨌든 오늘은 '진짜' 말년휴가 첫날이었다. 물론 그 전에도 계속 휴가였지만, 오늘이야말로 진정한 3차 휴가. 갑자기 도래한 감당할 수 없는 자유로 인해 어찌할줄을 몰랐다. 시나리오를 쓰려고 했는데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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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남원역에서

남원역이 안개 가득한 지리산 아래 있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남원역은 전통적인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지붕은 흑청색의 고풍스러운 기와지붕이고 무척 거대하게 세워져있다. 역 앞의 광장은 아주 넓어서 그런 전통적인 위엄을 뒷받침해주는 공간적 수용성을 지닌다. 남원역 주변은 너무나도 황량해서 벌판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이따금 비닐하우스도 있고 또 인삼밭도 있지만 대체로 황량한 느낌이 강하다. 이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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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킬로미터

해질녘부터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 걸었다. 네번째 40km행군이었다. 처음에는 구름이 가뜩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남원의 인적없는 길가에는 작은 불빛들만이 이따금씩 길을 밝혔다. 그러나 새벽 3시즈음이 되어선 밤 하늘 가득 무수한 별빛이 머리 위를 가득 메웠다.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에너지였다. 허리디스크도 디스크지만 스물일곱이란 나이가 그리 녹록치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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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 거주지에서의 사죄

고되고 어두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며칠째 밤이 계속 되고 있었다. 예하부대 X대대의 모범병사 이은X 병장은 자신의 거칠디 거친 생활에 대해 하소연을 쏟아놓았다. 우리는 아주 늦은 밤, 아무 불빛도 없는 암흑 속 깊은 참호 속에 몇 시간째 대기 중이었다. 아무 소리없이 대대장이 나타나 왜 교대시간이 되었는데 계속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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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시험장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 실기시험장에 갔다. 모두들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도 마찬가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나는 자격증 포상휴가를 위해서였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는 '자격증'이라는 이벤트를 이용해 20대의 정서불안을 자극한다. 가만히 있어도, 쉴새없이 토익책을 넘겨도 뒤쳐지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자격증을 따는 행위는 일시적인 안위를 안겨준다. 단지 플라스틱 조각 하나일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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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벽

이곳을 가두고 있는 사방의 벽들, 벽돌들, 철근콘크리트, 목재건축물들. 이것들은 우리들을 숨막히게 만드는 것들이다. 나는 한가하고 나른하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요일의 오후, 제법 북카페다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어놓은 부대의 도서실에서, 모든 벽들을 부수고 저 벌판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에스에프영화 속에서나 펼쳐질 스펙타클이 펼쳐졌다. 그리고 나는 마르케스의 책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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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피부, 따가운 심장

뉴스가 지나갑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하나. 하나. 떼어내버리고 싶은 두 눈동자, 차라리. 그리고 슬픈 피부. 온 몸이 쭈글쭈글 울그러진다. 오늘도 어떤 이는 목을 매달았고, 어떤 이는 제 몸에 신나를 부어 불을 질렀으며, 어떤 이는 이름도 남기지 않고 아무 기별없이 사라졌다. 실종자를 애타게 찾는 전단지들. 오랜 가뭄과 함께 기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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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시간

두달여째 줄곳 천주교 미사에 가고 있다. 휴가 나갔을때 두 번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남원에 있는 쌍교동 성당엘 간다. 미사 시간이 되면 성당 안이 가득차고, 앉아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니, 미사 시간이기에 소리는 없다. 조용히 자리가 메워지고, 성당 안의 공기나 뜨거워진다. 강복 시간에 신부님은 윤리의 회복에 대해서 주구장창 부르짖는다. 낙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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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새벽의 어스름녘. 보라색 빛깔의 공기와 안개를 가르며 날아가는 청설모처럼 내가 부딪히는 이 시간도 정처없이 부유한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과 시공간에 대한 아포리즘, <침묵의 세계>를 읽었다. 보다 더 과묵해졌다. 펄펄 뛰던 스물한살, 스물두살 시절이 점점 희미해져서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상황 대기가 끝나고 1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면 나는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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