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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 collection of 60 issues

이등병의 의문

왜 군에 입대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계의 잔인한 생리를 체득하지 못해 안달일까? 그렇게 열혈낭자하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자발적으로 복종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 스스로를 감시와 감시의 그물망 안에 가두지 않아도 되는데 왜 스스로 그 그물 안으로 들어가 제 몸을 옥죄려 하는걸까 왜 인상을 찌푸리며 상병이 꺾이는 그날만 기다리며 사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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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소설 『골짜기의 백합』

어제 밤에는 유난히도 잠을 이루기 힘들었다. 자꾸 나에 대한 혐오스러운 기억들이 떠올랐고, 죄책감에 몸둘 데를 몰라 자꾸만 침대 위를 뒤척였다. 발자크의 <골짜기의 백합>을 읽고 있었는데, 소설 속의 인간군상들만큼이나 내 삶도 지리하고 혐오스러운데가 뒤덮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어서 어디론가 응급전화를 해야했다. 하지만 어디로 해야할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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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늙어가는걸까

아침이 되니 절로 눈이 띄여진다 우유 한잔을 벌컥벌컥 마시고 세안을 하니 빡빡 머리를 한 이상한 녀석이 나를 보고 있었다 지난 밤에는 나쁜 갈등에 휩싸여 고민했다 그럴 것이 아니었다 세희와 남달에게 미안하다 그곳에 있던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하긴, 하루살이 불꽃이었겠지만 그래도, 왜 고민했을까 늙어가는걸까? 유일하게 사랑했던 내 모습이 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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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달

전라북도에 온지 한달이 지났다. 전주에서 1주일 있었고, 남원에서 3주일이 지나갔다. 쫄따구 이므로 열심히 경례하고 열심히 청소하려고 노력중이다. 스물여섯이라는 나이가 군대에서 적응하기에 썩 좋은 조건은 아닌 것 같다. 가끔 마음 속에서 걸리적거리는 무언가가 생기니 말이다. 그치만 꽤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살아야지. 한달동안 발터 벤야민 책 두 권과 소설책 아홉권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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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지기

군대에 오니 가만히 앉거나 서서 이런저런 잡스러운 생각을 하는 시간이 많다. 단순해지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을때도 뭐든 머리 속의 것들을 복잡하게 펼쳐놓고 생각하고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부대 앞 저 멀리 밭고랑 위에서 뭔가를 심고 가꾸고 있는 꼬부랑 할머니를 보면서, 버럭버럭 화를 내는 어떤 장교를 보면서, 책 속에 가득한 글씨들을 불러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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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오르는 것

점점 내 마음 속에서는 무언가가 불타오르고 있다. 도포차림으로 거지죽상을 하고 있는데다 꾀죄죄한 얼굴을 하고 있고, 과거에는 이런 마당 저런 마당에서 저 잘난맛에 살다가 좌절에 좌절,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다가 배꼽 안에 꽁하고 묵은 복수심, 자존감, 열정, 야심 따위들을 똘똘 뭉치고 뭉쳐, 마치 단단하디단단한 눈덩어리처럼 뭉쳐, 그 속에 감추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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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으로 빨려들어오는 텍스트

텍스트가 온 몸으로 빨려들어옵니다. 어제까지는 발터 벤야민 전집 속의 사진와 영화에 대한 예리한 텍스트들이었다면, 오늘부터는 플로뵈르와 발자크의 수려한 문체들. 그리고 내일은 한국 현대문학의 지리멸렬하고 자멸해가는 이야기들. 내 손가락들이 텍스트 안에서, 그리고 텍스트 사이사이로 휘감아져 쉴새없이 움직입니다. 점호 후에 불이 모두 꺼진 막사 안에서 랜턴을 켜고 읽는 책들의 글씨들은 꿈틀꿈틀 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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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청소기

머리가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잠이 들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저녁식사로 먹은 라면 때문에 속은 더부룩했고, 눈은 건조한 나머지 타들어갈 것처럼 말라있었고, 밤은 너무 싸늘하게 조용했고, 그럼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있지 않을 수 없었고, 지나간 기억들 중 불행한 일들만 자꾸 떠올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 없이 영화나 보고 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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