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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A collection of 60 issues

사과

작은이모부가 돌아가셨다. 늦은 밤. 과수원에서 트랙터를 타고 농약을 치다가 사고가 났다고 한다. 아니, 그래서인것 같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생각난다. 그때 난 일곱살이었다. 그가 결혼하기 바로 전이었는데, 그는 내가 처음으로 사귄 농부였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얼굴이 까만 사람이었다. 여름날 늦은 저녁이었는데, 막국수집에서 맛있는 막국수를 먹다가 나와서 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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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들의 무게

어제는 하루 온종일 비가 내렸다. 공기 가득 서려있던 먼지들이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에 쓸려 지상으로 쌓이고 쌓였다. 먼지들은 배수로를 타고 흘러가다가 검고 녹슬은 파이프를 따라 저수지쪽으로 흘러갔지만, 다행히도 솔잎이 수북 끼어있는 배수로 사이사이에 걸려 막히고 말았다. 이제 먼지들은 우리의 몫이다. 새벽까지 내리던 비는 해가 뜨기 무섭게 가라앉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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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나타난 부랑자

비로소 사람들이 공간으로서의 서울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시선들은 '비로소' 본격화되었다. 이것은 몇년전 청계천 복개사업 논란으로부터 거슬러올라가며, 더 멀게는 청계고가도로를 무너뜨리고 동대문 근방의 옛 아파트들을 부수는 계획으로까지 거슬러올라간다. 한국에서 둔갑한 신자유주의의 여러 남매들 중 한 녀석이 자신을 도시계획으로 위장하려다가 청계고가도로를 무너뜨렸고, 아파트들을 무너뜨렸다. 이명박씨가 청계천을 되살리는 대공사를 결정했을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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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화

U모 도시에서의 단일화에 성공했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결국 당선이 되더라도 무슨 희망의 새싹이 보이는 것처럼 말하고다닌다면 그건 크나큰 오산과 착오에 불과하다. 그런 식의 억지스러운 결과는 지난 25년여간 그곳에서 땀을 흘리고, 또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권태의 늪에 빠지거나, 살을 에는 듯한 고통 속에서 울부짖다가 죽어간 이들이 짜내고 짜낸 마지막 진물의 효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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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벽

이곳을 가두고 있는 사방의 벽들, 벽돌들, 철근콘크리트, 목재건축물들. 이것들은 우리들을 숨막히게 만드는 것들이다. 나는 한가하고 나른하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요일의 오후, 제법 북카페다운 분위기를 풍기게 만들어놓은 부대의 도서실에서, 모든 벽들을 부수고 저 벌판으로 날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에스에프영화 속에서나 펼쳐질 스펙타클이 펼쳐졌다. 그리고 나는 마르케스의 책을 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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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일만에 서울에 왔다

100여일만에 서울에 왔다. 엄마는 고독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택시비를 지불해주었다. 약속 시간이 늦었지만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난 이것을 모두 먹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꾸역꾸역, 말라 비뜰어진 밥숟갈 위에 냉장고 속에서 오래있던 멸치덩어리들과 눌러붙은 김들을 싸서, 천천히 씹어먹으며, 엄마의 말을 듣는다. 엄마는 가난한 목소리로 자신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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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피부, 따가운 심장

뉴스가 지나갑니다. 하나, 둘, 셋, 하나, 둘, 하나. 하나. 떼어내버리고 싶은 두 눈동자, 차라리. 그리고 슬픈 피부. 온 몸이 쭈글쭈글 울그러진다. 오늘도 어떤 이는 목을 매달았고, 어떤 이는 제 몸에 신나를 부어 불을 질렀으며, 어떤 이는 이름도 남기지 않고 아무 기별없이 사라졌다. 실종자를 애타게 찾는 전단지들. 오랜 가뭄과 함께 기이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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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시간

두달여째 줄곳 천주교 미사에 가고 있다. 휴가 나갔을때 두 번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남원에 있는 쌍교동 성당엘 간다. 미사 시간이 되면 성당 안이 가득차고, 앉아있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북새통을 이룬다. 아니, 미사 시간이기에 소리는 없다. 조용히 자리가 메워지고, 성당 안의 공기나 뜨거워진다. 강복 시간에 신부님은 윤리의 회복에 대해서 주구장창 부르짖는다. 낙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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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세계

새벽의 어스름녘. 보라색 빛깔의 공기와 안개를 가르며 날아가는 청설모처럼 내가 부딪히는 이 시간도 정처없이 부유한다.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과 시공간에 대한 아포리즘, <침묵의 세계>를 읽었다. 보다 더 과묵해졌다. 펄펄 뛰던 스물한살, 스물두살 시절이 점점 희미해져서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상황 대기가 끝나고 1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 되면 나는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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