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너 헤어조크의 베르너 헤어조크의 2009년작 <악질경찰>은 아벨 페라라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확실히 헤어조크답게 다시 만들었고, 같은 제목의 아벨 페라라 영화와는 다른 맛이 있다. 몇 번의 국내 상영에서 "배드 루테넌트"라는 원제로 상영되기도 했는데, 번역한 제목은 '악질경찰'이 맞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취한 연기도 빛을 발하고, 절정부의
베르너 헤어조크의 미친 영화 <스트로스첵> 이쯤되면 거의… 목숨 걸고 찍는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오히려 나는 아마존 숲에서 찍은 <아귀레, 신의 분노>나 크레타섬의 고성에서 찍은 <싸인즈 오브 라이프>보다 이 영화에서 더 그런 걸 느꼈다. 오싹할 정도다. 브루노 스트로스첵이라는 인물을 데리고 세상 끝까지 나아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베르너
베르너 헤어조크의 <싸인 오브 라이프> 베르너 헤어조크의 데뷔작으로 알려진 영화 <Lebenszeichen>을 봤다. 영어 제목은 "Signs of life"이고 1968년작이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시기, 에게해의 크레타섬이다. 독일 나치 소속의 작은 규모의 군대가 이곳에 주둔 중인데, 옛 성 안에 만들어진 거대한 무기창고를 단 네 명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다. 세 명의 남자와 그리고
베르너 헤어조크의 <아귀레, 신의 분노> 베르너 헤어조크의 72년작 <아귀레, 신의 분노>. 가장 많이 알려진 작품이지만 그렇다고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는 아니다. 그만큼 헤어조크는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16세기초 스페인에서 출발한 신대륙 원정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황금으로 가득하다는 전설의 땅 엘 도라도를 찾기 위해 원정대는 아마존의 숲 속을 헤맨다. 그러다가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 에로틱 스릴러 퀴어무비 페드로 알모도바르 주간 두번째 영화. 생각외로 드라마가 강한,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 전체의 미장센을 지배하고 있는 이 색깔들이 이리도 화려하고 원색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조금 궁금하다. 나로써는 살짝 이해가 안된다. 어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예컨대 프랑코독재 시절이 희뿌옇거나 단조로운 색깔의 세계였던 것에 대한 대비인가. 아니면, 복잡다기한 욕망과 쾌락의 발산들? 영화 전반부에 프랑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도 알모도바르의 영화 <라이브 플래쉬 life flash>를 보았다. 지금까지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은 왠지 모르게 계속 보기를 미루었는데, 그건 어떤 낯설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감독의 영화이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별 특색 없는 영화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알모도바르처럼 자기만의 색깔과 스타일을 갖고 있는 작가들의 영화들은
데니스 호퍼의 <이지라이더> 데니스 호퍼와 피터 폰다가 공동으로 제작한 영화로, 6,70년대 미국 영화에 새로운 전지를 마련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는 영화이다. 68년작이었던가? 그 당시 미국의 젊은 히피 문화, 저항문화,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 같은 것을 배경으로 삼아서, 두 남자의 탈주극을 그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리듬이 상당히 기괴하다. 만약 이런 식의 불규칙한 변주를 넓게 통일시켜서 바라보자면 영국
프랑수아 트뤼포의 <부드러운 살결>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처음 보았다.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마이티 아프로디테"라는 주제로 시네바캉스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이 중 트뤼포의 영화들도 몇 개 상영되고 있다. <마지막 지하철>, <이웃집 여인>, 그리고 이 영화 <부드러운 살결>. 앞의 두 영화는 80년대
허우샤오시엔의 『빨간 풍선』 <빨간 풍선>을 다시 봤다. 볼때마다 좋지만 어제는 더 좋았다. 볼때마다 새로운 겹을 만나게 되고, 볼때마다 다른 세계가 느껴진다. 이런 영화는 많지 않다. <빨간 풍선>, <아워뮤직>, <미치광이 피에로>, 음... 좋은 영화는 많지만 볼때마다 새로운 영화는 얼마 없다. 어제 네번째 봤는데, 어제는 줄리엣
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 | 바깥이 없는 국가 <교사형>을 봤다. 굉장히 복잡하고 관념적인 영화이다. 보통 영화에 대해서 규정할때 "저 영화 너무 관념적이야."라고 말하면 영화를 '영화'다운 것이 아닌, 어떤 이론적인 틀에 끼워맞추어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식으로 비평하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뜻으로 쓰는 것인데, 여기서 내가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