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이라는 ‘상징’의 붕괴

문제의 본질적 현상은 '부도덕'이 아니라, 익명의 대중들의 방향 모르는 분노들이다. 내일 아침, 긴 연휴를 끝내고 고향에서 막 올라온 많은 시민들은 불에 타 그을린 남대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대문이라는 ‘상징’의 붕괴

숭례문 목조 누각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새벽1시, 밤잠을 이루기 전 tv켠 사람들, 인터넷을 아직 끄지 않은 사람들은 청천벽력처럼 느껴질만한 놀라운 뉴스에 잠을 이루기 어렵게 되었다. 소방차 50대가 모여 물대포를 쏘아댔고, 소방인력 수백명이 달려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나무로 만든 건물 하나 무너진 것에 불과하고, 사람도 한 명 다치지 않았으니, 그게 무슨 별거냐, 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국보'1호라는 명명이 주는 상징성, 서울의 가장 첫번째 랜드마크로서의 대표성을 지녔던 숭례문(또는 남대문)이 불에 타 사그라져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tv 생중계로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그것과는 다르다. 이런 것을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의 21세기 국면 이후 목격 가능한 '상징의 붕괴'라고 말한다. 세계 경찰국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미국인들이 2001년 9월 11월의 월드트레이드센터의 명실상부한 '테러 붕괴'로 극악할 정도의 상실감과 분노에 휩쌓이게 됨으로써 국가-이데올로기적 상징, 헤게모니의 '이미지 붕괴'를 목격했다면, 2008년 설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벌어진 이 화재는 익명의 이름을 한 타자에 의한 정체를 알 수 없으며---동시에 무지향성인---분노로 가득찬 한국 사회를 증명하는 실체적 현상을 목격한 것이다.

한편 화재의 원인으로는, 처음에는 조명 설비가 망가져 화재를 일으킨 것이 아닐까, 재기되기도 했지만, 몇몇 목격자들에 의해 '방화'가 유력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직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어쩌면 화재의 원인으로서 '방화'가 확실한지 조차 영영 알수없을지도 모르며, 게다가 지금까지도 용의자가 누구인지 거의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검정색 잠바 차림에 검정색 등산바지 차림의 50대 남자가 목격되었다는 희뿌연 '기억'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중의 '분노'는 이처럼 '사적'이고, '익명자적'이다. 대체 어떤 분노가, 어떤 문제가 방화자로 하여금 '국보1호' 문화재에 불을 놓게 하였을까? 불에 타버려 완전히 무너져버리고 검은 잿더미만 앙상하게 남은 해당 문화재 숭례문은 명실공히 '수도'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었단 말이다. 세종때 지어졌으며, 그 후로 임진왜란에 온갖 호란을 다 겪을 때에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561년을 버텨온 문화적 자산이었다. 그러나 오늘 이것은 완전히 불타 없어졌다.

전문가들과 매스미디어는 문화재청과 소방당국의 늦장대처를 탓하기 시작했다. 왜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느냐고 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재작년에 문화재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대문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했던 서울시 당국의 문제였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시장은 이명박 현 대통령 당선자였다. 여기서도 겁쟁이들의 수박 겉핥기식 막가파 행정가 이명박 비판이 삐죽 나와있다. 물론, 그것도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다.) 일리 있는 비판들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정부 기관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조차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방화를 누가 예상했는가? 그 자리에 경비가 있었다 한들, 경비의 존재 자체가 방화를 저지른 자의 분노를 사그러뜨렸을 순 없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적 현상은 '부도덕'이 아니라, 익명의 대중들의 방향 모르는 분노들이다. 내일 아침, 긴 연휴를 끝내고 고향에서 막 올라온 많은 시민들은 불에 타 그을린 남대문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후, 정부 기관은 이 그을린 고궁의 한 잔해, 수도의 랜드마크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높고 크게 아시바를 쌓고 어두운 천으로 가릴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무엇으로 치유될 것인가. 한 시대의 주기가 끝나고, 거대했던 헤게모니적 상징도 이제 막을 내릴 것이다. 남대문의 앙상한 잿더미 바로 뒤에 그것과 함께 자랑스럽게 위치해있던 서울시청, 삼성그룹 본관은 그 내막을 드러낼 것이다.

서울의 랜드마크, 대한민국이라는 '민족'-국가의 역사-사회적 상징물, 남대문이 무너졌다. 세종의 첫째 형이 화기가 강한 관악산의 화기가 경복궁으로 오지 않게 하기 위해, 불의 기운을 막기 위해 부러 세로로 현판을 써서 붙였기에 서울의 여덞개 문 중 유일하게 세로 현판을 갖고 있었다던 '그 남대문'이 '불'로 무너졌다. 하기에 남대문 화재-붕괴는 어떤 전설의 붕괴이기도 하다. 수도의 랜드마크라는 자본주의-일국의 '상징'의 붕괴이기도 하다. 모종의 (기표)전시적 행정국가의 헤게모니 상징의 붕괴이기도 하다.

남대문 화재 붕괴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만 같은 하나의 질문이 내 머리를 휘감는다. 대체 어떤 분노이기에 정체도, 방향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차별적인 것일까?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이 아노미적이고 분열적인 사적 분노들로부터 자유주의 부르주아지들의 헤게모니를 지켜낼 수 있을까? 아니면, 급진적인 대안 사회운동은 대중들의 무차별적 분노가 아닌 '저항'을 위한 대중운동을 다시금 사회운동의 힘으로 옮겨갈 수 있을까? 오히려 '대선'이라는 합법적 정치-경쟁의 시공간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난 지금 이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강진에 의해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판이 흔들리고 있다. 남대문 화재는 그에 대한 여러가지 징후들 중 주목해야하는 징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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