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사법화

지난 가을 한 변호사는 칼럼에서 오늘날 유행하는 '정치의 사법화'라는 수사의 훨씬 정확한 말이 '사회의 사법화'라고 했다. "법원이 최후의 보루가 아니라 민원센터가 되면, 사회의 다른 영역이 위축"될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법원은 "범죄자를 처벌할 수 있을 뿐 피해자를 지원하고, 범죄로 파괴된 공동체를 복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처럼, 사법화된 사회는 "높은 처벌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지, 힘 없는 사람들의 단결과 조직적인 힘을 키우는데 무관심하다. 이런 사회에서 훌륭한 판결을 내린 판사나, '정의로운'(?) 검사, 양심적인 변호사는 영웅이 되지만, 활동가나 정치인, 자신의 터전에서 소박하게 미래를 일구는 사람들은 조연이 되고, 착취받고 억압받는 대중들은 엑스트라가 된다. 이런 경향은 사람들이 '정의구현을 위해' 사형 같은 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데에 열광하는 일에 일조하고, 조직적 운동을 만드는 일에 냉소하도록 조장한다.

이는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길이다.

사회운동이나 학술운동, 그밖의 직업세계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상당수 청년들의 불안은 공무원시험이나 로스쿨에게 잡아먹혔다. 그만큼 미래의 어떤 가능성도 사라졌다. 용기 있게 넘어서려는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는 게 아닌데, 너무 쉽게 잡아 먹히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법화된 진출론이 전면화된 관계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함께 꿈꿀 수 없다.

실은 변호사나 검사가 제조공장 노동자나 대형마트 캐셔, 건설 노동자보다 덜 벌고, 덜 영예로운 사회가 좋은 사회일텐데,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갈 때, 여전히 대학 나온 청년들이 로스쿨에 가는 게 유행일까? 지인 중 변호사가 너무 많은데, 이게 멀쩡한 일은 결코 아닌 것 같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고, 불가피하게도 뭔가 비교당한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더 생각해봤자 뭐 하나. 부동산 투기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안정적이고 소득이 많은 직업을 택해 "정의로운"(?) 일도 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도 아니지 않나.

아쉬운 결정을 내린 이들을 붙잡고 술을 마시며 밤새 말리는 건 20대 때 너무 많이 해봤다. 그냥 앞으로는 좋은 사법적 결과를 만든 판사나 변호사의 부수적인 노력같은 것에 찬사를 아껴야겠다. 대신 그러한 결과에 이르기까지 선두에서 싸운 당사자들을 축복하고, 모든 것이 그들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점을 아낌 없이 말해야겠다. 사회변화는 사법인들이 아니라, 모순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들이 이끄는 것이란 당연한 사실을 더 자주 말해야겠다. 누구보다 삶을 훨씬 즐기고, 이 재미를 훨씬 떠벌려야겠다.

정치의 사법화가 전면화된 시대, 관종과 따봉의 시대에 더는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여기저기서 상근활동가 좀 구해달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는데, 이런 상황은 참 고역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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