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요일 함평에서
굳이 엄밀하고 명료하게 구획을 나누자면, 나는 두 가지 세계를 산다.
지금 이순간에는 내가 숨을 쉬고있는 이 세계에 익숙해져있지만, 다른 세계의 공기를 마실때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그리고 지금의 이 세계를 잊게 된다. 이 두 가지 세계를 나는 '이 세계'와 '다른 세계'라고 부른다. 다른 세계는 종종 꿈을 통해 소환된다. 그 속에서 나는 감정과 이성의 직조물에서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들을 재경험하고 해산시킨다. 이 세계는 이성과 과학이 지배적으로 내 머리속과 가슴을 지배하지만, 그 세계에서는 감성과 상상력이 내 몸을 지배한다. 그곳에서 나는 전지적이며 3인칭적인 시선으로 재구성된다. 그곳에서 나는 '이 세계'의 나도 만날 수 있는데, 그때에는 내가 만나는 '나'조차도 객관화된 타자로 보여질 정도이다. 나는 하늘에 붕붕 떠있다.
지난 화요일 나는 전라남도 함평에 있는 국군병원에 다녀왔다. 의사는 내장 출혈이 의심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발화들과는 다르게 하루종일, 그리고 잠에 드는 그 순간까지 내 심장은 고동치며 다른 세계로의 문을 예비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침 일찍 전달받은 작은 편지 때문이리라. 편지 속에서 2년전의 어느 가을날을 끝으로 본 일이 없는 고려대 선배는 지난 날의 기억들을 환기시켜주었다. 편지 속에는 '추억'이라는 단어가 비뚤거리는 글씨체로 쓰여져있었다. 그 어색한 단어에 내 온몸은 흔들거렸다. 나는 슬프고,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잊혀진 세계가 작고 짧은 편지지로부터 흘러나왔다.
전라남도 함평의 공기와 논의 풍경들이 기억 속의 이미지들과 함께 중첩되었다.
함평에 다시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