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노동자예술단의 노래 <베이징, 베이징>

신노동자예술단의 노래 <베이징, 베이징>

이 노래는 중국 베이징 皮村(피촌)에서 활동하는 新工人艺术团(신노동자예술단)이 직접 작사/작곡하고 부른 노래다. 베이징에 사는 한 신노동자의 시선에서 그의 외롭고 쓸쓸하며 가난한 처지를 노래한 것인데, 微信에서 mp3와 가사를 구해서 올려본다.

지난해 말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의 저자 뤼투(呂途) 씨는 이 책에서 '농민공'(중국의 농촌 출신 도시이주 노동자)을 "신노동자"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2억 9천만 명에 다다르는 이들을 중국 사회의 새로운 주체로 호명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농민공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 나와 있다.

뤼투, <중국 신노동자의 형성>, 나름북스

이 책은 베이징에 오기 직전에 읽은 책이었는데, 인터뷰 자료가 풍부하고, 저자가 어떤 논거를 바탕으로 어떤 전망을 모색하려 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 대한 백승욱 선생님의 추천글은 아래와 같다.

려도는 '농민공'이란 이름으로 잔여적 비주체적으로 지칭되던 중국의 거대한 새로운 노동자군을 '신노동자'로 불러내 무대의 중심에 세우는 이론적 실천적 작업의 중심에 서 있다. 그녀 자신이 이들 신노동자의 삶을 함께 하면서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삶의 방식, 문화 모두를 바꾸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음을 역설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운동 경험이 서로를 어떻게 북돋을 수 있는지 발견한다.

이 책이 번역 출간되었을 때 레디앙과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서평 기사도 있었다. <한겨레> 기사 중 일부를 보면,

신노동자 ‘계급’의 등장을 말하긴 아직 이르지만, “이들 노동자들 한명 한명의 각성과 인식이 자신과 집단의 운명을 결정하고 중국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금은 미약해 보이지만, 중국 신노동자들의 각성과 요구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한 중국에서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분배하고 어떤 발전모델의 길로 나가게 될지를 결정하는 ‘아래로부터의 동력’이 될 것으로 그는 믿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중국 신노동자들의 고민은 오늘 한국 비정규직 노동자들, 청년 구직자들의 번뇌와도 맞닿아 있다. “나의 한국에 대한 유대감은 전태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지은이가 한국에 와서 노동자, 청년들과 만난 뒤 이 책의 번역자에게 “당신이 중국 신노동자의 현실과 미래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세계 노동자의 운명에 주목하는 것이고, 이것은 내가 전태일의 삶과 죽음에 관심을 갖는 것과 같은 이유다”라고 말한 것도 그런 뜻이리라. 이 책을 읽는 이들이 한국 사회에 자욱한 반중감정과 중국위협론의 연기를 걷어내고, 중국 땅의 현실과 그곳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 어깨를 맞대고 함께 자본과 국가주의의 논리를 넘어서기를 기대하게 된다.

뤼투 씨가 한국에 방문했을 때 문화대혁명에 관한 소설 《민주수업》의 저자 차오정루(조정로) 선생님과 함께 좌담회를 가졌던 적이 있었나보다. (그때 나는 이런 행사가 열린다는 점을 전혀 몰랐다.) 그때 그가 했던 말 중 일부를 그의 책을 번역 출간한 '나름출판사' 블로그에서 퍼왔다. 그가 소개한 일화는 아래와 같다.

“얼마 전 나는 남방의 노동자 기구 몇 곳의 초청을 받아 강좌를 진행했다. 끝난 후에 옛 동료와 함께 식사를 했는데, 같은 테이블에 있던 대학생 몇몇과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옛 동료는 참지 못하고 '북경 노동자의 집'에 대한 비판을 시작했다. 1) 남방의 활발한 노동자운동에 비해 낙후되어 있고, 따라서 노동자 선봉 문화를 지도할 자격이 없다. 2) 수년 동안의 지역 사업을 했지만 노동자 핵심 간부를 몇 명이나 양성했는가? 진전과 발전이 보이지 않는다. 3) 생태 농원의 모델에 의존하는 것은 오랫동안 축적된 사회적 자원이고, 동원되는 것은 도시 중산계급이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 공익기구가 모방할 수 있는 모델이 아니다.

이에 대한 나의 응답은 다음과 같았다. 1) 나는 남방의 노동자운동이 활발해지기를 특히 희망한다. 내 관찰에 따르면 확실히 광저우와 선전 노동자의 의식 수준은 전체적으로 볼 때 쑤저우에 비해 10년 앞서 있고, 베이징에 비해서는 15년 앞서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종의 앞섬이라는 것이 있다손쳐도, 위위안 신발공장에서 수만 명이 집결했지만 어떤 결과도 얻어내지 못했으니, 이와 같은 활발함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어찌됐든 남과 북이 서로 호응하는 것이 나쁜 것인가? 어쩌면 서로 다른 형식으로 호응하는 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닐까? 왜 꼭 한 쪽을 폄하하고 배척해야 하는가? 2) 내가 보기에는 지역 사업을 부정하는 어떤 사람도 모두 가짜 혁명가이다. 참되고, 실천적으로 지역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필요한 때에 급진적 혁명 대오에 참가할 수 있지만, 급진 혁명의 후광만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장기적이고, 지속적이며, 묵묵히 책임을 다 하는 불가결한 지역 사업을 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혁명 이전이든 혁명 이후이든, 누구나 생활은 지속해야 한다. 물론 진정한 혁명가가 필요한 시기에 일정한 생활을 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3) 일정한 가치관과 방향성 아래에서 형식과 모델이 많을수록 좋다면, 왜 모델이란 것이 그대로 복제되어야만 좋은 것인가? 만약 하나의 모델이 효과가 있으면, 분명히 참고하고 본받을 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만약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부단히 학습하고 사고해서 더욱 심화될 수 있을 것인데, 왜 가볍게 부정하려고만 하는가. 우리가 전우라는 내 생각이 단순히 짝사랑인 것일까.”

그리고 그와 관련된 인터뷰 기사가 하나 있는데, 참고로 공유. 그를 인터뷰한 펑파이신문(澎湃新闻)은 상하이를 근거로 한 언론인데, 쫌 뭔가 조금 달라보이고, 뭔가 있어보이는 게 있다. 중국어를 잘 하게 되면 더 많이 참조하려고 한다. 吕途谈中国新工人:美国和欧洲工人都不是我们的出路

노래 가사를 번역해보았는데 틀린 점이 있을 수도 있다.

베이징은 넓고 넓어 / 베이징은 춥고도 춥지 / 베이징은 또한 덥기도 해 / 베이징에는 내 집이 없어 / 나는 이미 몇 년 동안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어 : 고향의 부모님은 아직 잘 계실까? / 나는 정말 돌아가서 보고 싶어 / 내 부모님과 고향을 보고 싶어

내가 베이징에 왔던 그해를 기억해 / 사람도 땅도 생소했었지 티격태격했어 / 울퉁불퉁하기도 했지 / 마음 속의 슬픔과 괴로움을 누구에게 말하겠어 / 한 해 한 해 지나갔지 / 내 일은 하나 하나 또 바뀌었어 / 근데도 돈은 벌지도 못 했어 / 억울함을 한 가득 받아들여야 했지 / 내 마음의 아가씨 / 당신은 도대체 언제쯤 나타날 수 있나요? / 내 마음 속의 망상은 / 이미 더뎌지고 흐릿해졌어 / 베이징, 베이징! / 너는 여전히 내 마음 속의 베이징이 맞니? / 너는 단지 나의 역참일 뿐이니? / 너를 떠나고 나는 또 어디로 가야할까?

베이징은 넓고 넓어
베이징은 춥고도 춥지
베이징은 또한 덥기도 해
베이징에는 내 집이 없어

베이징은 넓고 넓어
베이징은 춥고도 춥지
베이징은 또한 덥기도 해
베이징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어
베이징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어
베이징에는 내가 있을 곳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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