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브레송의 <소매치기>

<소매치기>에서 인물들은 특별한 표정 연기도 없이 ‘행위’와 ‘등장’으로서만 표면에 드러난다. 배우를 어떤 모델처럼 대하려 했던 로베르 브레송의 연출론 때문이다. 심리 대신 행동이 우선이며, 이는 브레송의 관심의 주제를 알게 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미쉘은 소매치기이다. 초반부에 캐릭터에 대한 소개 없이 경마장에서 ‘소매치기’를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미쉘이 소매치기에 대한 책을 읽으며 스스로 어떤 고아한 지위에 오르길 갈망하는 것은 자못 작가 자신을 연상케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언젠가 진정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서 어떤 속박같은 것이 운명적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음을 안다. 그것은 사랑일수도 있고, 희생이나 죽음일수도 있지만, 그래서 자신에게 너무나 비극적일 수도 있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이 범상치 않은 소매치기의 행동은 신에 대한 질문이나 자유, 삶에 대한 것 까지 나아간다. 세상에 이런 소매치기가 있을까 싶지만, 사실 그런 건 이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므로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주인공 소매치기의 어떤 말없는 행동방식이고 그의 속죄 의지이다. 이때 손은 대단히 행위 자체로 ‘말’하는 ‘인격’ 그 자체이다. 어쩌면 이 영화에서 손은 하나의 캐릭터, 혹은 더 나아가서 ‘주인공’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손가락 - 손에 잡히는 지갑과 돈뭉치 - 긴장을 유발하는 눈길 - 주인공의 눈빛 클로즈업으로 이어지는 소매치기라는 행위의 공식은 브레송의 영화에서만 볼 수 있는 하나의 코드이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행동의 변을 대신하는 것 같다.
여주인공 Marika Green은 너무 매력적이고 굉장히 금욕주의적인 인물이다. 생긴 것도 완전히 ‘금욕주의’ 그 자체이다. 여기에 어떤 겉치레적인 연기나 껍질, 치장, 표정, 반응도 미미해서 그것이 대단히 극대화되고 매우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니까 브레송의 이러한 통제와 조절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략 알 것 같다. 브레송은 영화에 대해서 말할 때 헐리우드 영화와는 거의 대척점에선 듯한 입장을 대변한다. 일찍이 그는 “영화는 스펙타클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일 뿐”이라고 말한 바 있을 정도 영화예술 고유의 ‘언어’에 대한 기술적 전취를 고민하고 실천했다. 이 영화는 그 실천의 가장 최전선에 있는 작품이며, 어떤 면에서는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생각도 들게 하기도 한다. 랑시에르적 의미에서의 ‘정치적인 것’의 ‘미학’으로서 말이다. 어쩌면 ‘이미’ 언설들이 있기 전에 ‘미학’의 재생을 행동으로 실천한 작가가 바로 브레송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마지막 대사는 너무나 비통하게 들려서 이 비극이 단지 이것으로 끝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나 자신에게도 되풀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고 해야하나. 브레송이 원했을는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감정이입이 들게 한다.

“우리가 이렇게 만나기 위해 얼마나 되돌아와야만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