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예술종합학교 중장기 발전계획? 지금 확인했는데, 한국예술종합학교 누리에 "학교 중장기 발전계획 수립 연구용역 결과보고서"가 올라와 있다. 내가 알기로 근 10년만에 세워진 것이고, 그때는 황지우 전 총장이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발주를 맡겼었고 그후로 매우 황당무계한 '학교 경영' 기획이 세워졌었다. 이를테면 'k-arts'라든지, '창조적 소수'라는 캐치프레이즈라든지. 이번에는
유럽의 미래는 그리스에 달려있다 "그리스는 1944년 독일점령 이후, 처음으로 유례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임금과 퇴직연금의 급격함 감소, 50%에 육박하는 청년실업, 기업, 영세상인, 언론, 출판사들의 도산, 수천의 걸인과 노숙인들, 기상천외하고 임의적인 세금부과, 반복적인 임금과 퇴직연금의 삭감, 일련의 민영화, 공공서비스(보건, 교육) 및 사회보장 서비스의 사보타쥬…. 자살의 증가… 그리스 재정지원에 따른 유럽연합 및 IMF의 각서로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이 글은 2012년 5월에 인쇄 발행된 <얼룩진> 2호에 실린 글이다. <얼룩진>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돌곶이포럼이 만들었던 무크 독립잡지였다. 2014년경까지 그것은 5호까지 발행됐고, 이후에는 정체 상태를 겪었다. “내가 처음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이유가 뭐였지?” 만족스럽지 못한 워크샵 결과를 돌아보니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의
우리 시대의 비극론 졸업영화를 찍어야 한다. 잘 찍고싶다. 활동과 창작의 두가지 가지를 모두 잘 잡고서 미래에 대한 희미한 풍경을 엿보면서 졸업하고싶다. 영화 연출 전공이면서 꽤나 오랫동안 (2011년 3월 이후 계속) 영화만들기와 거리를 두고 학교를 다녔다. 거기에는 무수한 사연들이 있지만 여기선 굳이 얘기하지 않으려한다. 한눈팔고 산 건 아니다. 내가 당장 "좋은 영화"
핸드폰 속 사진들로 돌아보는 2011년 2011년 한 해동안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을 돌아보았다. 스쳐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작고 후진 스마트폰 하나로 기동적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새록새록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애시당초 스마트폰을 산 목적이 잘 달성된 듯 하다. 한미FTA 비준안이 아직 국회에서 비준되기 전, 거의 매일 같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으로 갔었다. 그때 길바닥에서 본 '격문'이다. 어느
"감히 예술을"? 나는 종종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예술을 '감히' 돈의 가치로 평가하려는것이냐?"고 반발하며 대단히 일시적이고 방어적으로 신자유주의 교육구조조정에 맞설때, 이상한 불편함을 느낀다. 얼마전 추계예술대가 교육과학부의 괴이한 양적 평가기준에 의해 '부실대학 판정'을 받았을때의 반발이 그런 아이러니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때의 대부분의 뉘앙스들은 마치 예술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교육과 능력주의 "대중교육은 신분과 계급에 따른 교육의 차별을 일소하고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모든 대중에게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를 통해 지적 차이를 해소하고 지식에 대한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형식적 조건이 마련된다. 그러나 대중교육은 성과주의와 결합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내적 분할과 차이의 체계를 정당화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에 따라 대중교육은 지적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도브첸코의 『포르투갈식 이별』 <포르투갈식 이별>은 <아스날> 등을 만든 러시아 몽타주 영화의 대가 도브첸코가 뒤늦게 1980년대 리스본에서 환생해 찍은 영화처럼 보일정도로 미학적으로 닮아있다. 그러나 <대지>나 <아스날>이 뭔가 적합한 스타일과 내용의 조화가 느껴지게 한다면, 이 영화에서는 시차의 간극이 너무커서 쌩뚱맞게 늦겨지기도 하고, 과도한 멜랑콜리의
벨라 타르의 『토리노의 말』 어제 전주국제영화제JIFF에 왔다. 어제는 <실비아의 도시에서>라는 호세 루이스 게린의 영화를 보고, 또 벨라 타르의 은퇴작인 <토리노의 말>을 봤다. <토리노의 말>은 정말 경악스러울만큼 소름돋는 명작이다. 아마도 올해 극장에서 본 최고의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고 섯불리 예상해본다.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기에 대한 탁월한 은유이자,
코엔 형제의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불확정적인 세계의 교착상태 연휴 전날 각색연습 수업 청강을 하러 학교에 갔다. 수업때 나의 <필경사 바틀비> 각색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들을 들었다. 어려운 작업이라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다. 내가 정말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가지각색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관념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는 부담감까지 겹쳐져서 계속 고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