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사진론에 대한 메모 아우구스트 잔더의 사진에 대해 벤야민은 사람의 얼굴로부터,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을 찍은 사진으로부터 '아우라'를 없앤 작가라고 말하고 있다. 당대의 초상화적인 미술 전통과 절연하고 '유형학적 사진'의 계통을 창시한 최초의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 그는 사람의 얼굴들을 일곱가지로 분류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했다. '대지'에서부터 시작해 점점 멀어져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궁금증을 참기 어려워 <인셉션>을 보았다. 그것도 개봉일인 21일 아침 10시 조조로 말이다. 나로서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태도다. 아니, <마더>에서 그와 비슷한 짓을 하긴 했으니 패쓰. 어쨌든 기대만큼 재미있었고, <다크나이트>만큼 깊이 있진 못하지만 서사의 층위가 워낙 복잡하고 중층적이라서 할말이 참 많은
베르너 헤어조크의 헤어조크의 미친 영화 <피츠카랄도>를 봤다. 지금까지 본 베르너 헤어조크의 영화 네 편들 중 가장 밝은 영화임은 분명하다. 젊은 시절의 밑장 다 보겠다는 심보는 막판에 수그러들고 어느 정도의 굴복이 보인다. 다만 세상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로 가득찬 인물은 여전히 드러난다. 카루소의 오페라 공연에 미친듯이 열광하는 주인공 피츠카랄도는 아마존강의 정글
연극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문화연대에서 주관하는 "피리부는사나이"에 또 당첨되어서, 한달만에 또 연극 공연을 봤다. 조금 실망스러웠고, 너무 파탄적으로'만' 끝나버린 게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이 작품은 확실히 서사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딱 잘라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전반부에 코믹한 두 캐릭터의 힘으로 유머러스함을 유지하고, 중간 지점에서 갑자기 장르적 변전을 시도한다.
뉴스1의 어느 젊은 기자 <뉴스1>의 모 젊은 기자가 경총과 삼성이 뿌려서 선배가 쓰라고 준 내용을 받아써서 쓰레기 기사를 썼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엉망인데다 당사자인 지회에는 취재 조차 하지 않고, 바지사장들과 경총의 말만 받아썼다. 정정보도와 공식사과 요구했고, 하지 않으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도 할 것이다. 기자로서의 양심과 사명감도 없나?
부활절 예배 지난 일요일 부활절 예배를 '구경' 간 적 있다. 그곳에서 지회장님의 기도를 듣고, 어느 감리교 목사의 기도를 들었다. 자본의 탐욕과 우리 모두의 죄의식을 질책하는, 그런, 기도였다. 격정적이기에 눈물이 나는, 그러나 죄의식에 대해 공히 확인하는 것이 가히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있어서는 안 된다고
'삼성 무노조'는 끝났다 오늘 오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상경투쟁단 조합원들 중 14명이 서초동 삼성전자 지하 딜라이트샾에 들어갔다가 작은피켓을 들고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나왔다. 핸드폰 진열대 앞에 서 있던 나도 개들에게 무자비하게 끌려나왔다. 막무가내였다. 그들은 내가 지난 11~12월에 본관 앞 최종범 열사투쟁 농성자 중 1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을 행사해 밖으로 끌어냈다. 그 피켓 문구는 이런 것이었다. "재용씨,
수원 영통에 삼성전자서비스 AS노동자 1천명이 모였다 삼성의 도시라는 수원 영통에 삼성전자서비스 AS노동자 1천명이 모였다. 삼성전자 공장, 삼성전기 공장, 삼성디스플레이 공장 앞을 지나가며, "노예로 살수없다! 민주노조 사수하자!", "무노조 경영 끝장났다! 민주노조 지켜내자!" 구호 외치며 삼성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외치고 또 외쳤다. 들렸을까? 너무 가깝고, 또 큰 외침이어서 들렸으리라 생각한다. 그 넓은 공장들을
워킹데드 미국드라마 워킹데드 시즌3에서 12화를 보면 피폐해져가는 세계에서 미쳐가는 인간들이 나온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도 가끔은 워킹데드처럼 살아있는 시체들이 걸어다니는 곳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서로를 집어삼키기 위해 경쟁하고 또 싸우고, 그 위에 무언가 알수없는 음모 따위가 있고. 아마도 좀비영화의 정치성은 그런 지점에솨 만들어지는 것일 게다. 그런 세계에서 미치지 않고 자신을 잘 지킨다는
철도노조 파업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철도노조 파업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철회될 가능성이 높다. 대중조직이 고민하며 결정하는 것을 지켜보고 의견을 전달할 순 있는데 그 결정의 쓰라린 판단도 존중해줄 수 있어야 한다. 철도노조가 지금까지 이끌어온것도 진짜 대단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만약 철도노조 조합원이었으면 안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설득하려 노력했을테지만, 복귀율과 퇴각의 조건을 뼈아프게 판단해야하는 문제도 있었을게다.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