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의 동아시아 말고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자본주의의 위기와 동아시아 2007년 서브프라임 위기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는 곧바로 세계화됐다. 세계 곳곳에서 달러 부족 사태가 일었고, 유럽에선 유로 가치 하락으로 인한 재정위기가, 라틴아메리카 등 여타 지역도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다. 한편 동아시아는 위기를 겪었지만 신속한 회복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중국·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주요 국가들은 G7을 대체하는 G20에
이른바 '전환의 시대'에 무엇이 필요한가 - 이병한의 『반전의 시대』 비판 얼마 전 레드북스에 갔다가 이병한의 <반전의 시대 – 세계사의 전환과 중화세계의 귀환>를 읽었다. 저자에 대한 관심보단 문제설정 자체가 흥미롭게 느껴졌다. 저자가 프레시안에 연재 기고했던 칼럼들을 모은 이 책은 독자들과 일군의 지식인들에게 ‘니들은 왜 이걸 모르니?’라고 반복해서 꾸짖는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다. 저자는 세계 인식의 패러다임과 가치 기준의 획기적인
정치 소비자의 열정은 배반당할 수밖에 없다 열아홉이던 2001년 6월 어느 날. 나는 어머니를 따라 대전 대덕에 있는 청소년수련관에 갔었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창립 1주년 행사가 열린 날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정치인을 봤고, 연설을 들었다. 참으로 격정적이고 멋있는 연설이었다. 그 후로 노무현이란 정치인이 존경스럽게 여겨졌다. 그가 쓴 링컨에 대한 책을 감명 깊게 읽었고, 또 수능 공부에 한창이었던
호치민시티에 가면 꼭 가야 하는 호치민시립미술관 첫날 가장 먼저 간 곳은 사실상 호치민시립미술관이었다. 베트남 미술이 궁금했고, 미술 작품을 통해서 베트남의 역사와 현실을 가늠해보고 싶었다. 이해는 텍스트를 통하는 게 가장 좋지만, 때로 이미지를 통한 독해가 가져오는 또 다른 이해의 폭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감의 폭이 달라진다고 할까. 건물이 멋있었다. 이런 걸 콜로니풍이라고 하던가? 프랑스가 코친차이나 식민지
베트남 호치민시티로 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남아는 전혀 끌리는 여행지가 아니었다. 동남아 국가들이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 자체에 대한 잘못된 편견, 이따금 뉴스 보도를 통해 듣곤 하는 '한국인-중년-남성들이-그곳에서-보이는-온갖-천태만상들', 상대적으로 저개발 국가로 가서 갖는 부유한(실제로는 전혀 부유하지 않지만) 시민-되기의 불편함 등 부정적 인식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무지 탓도 있었던
아시안컵 결승전이 있던 날 호치민시티의 밤 베트남 호치민시티에 도착한 1월 27일은 축구 아시안컵 결승전이 있었던 날. 축구 약체였던 베트남이 전무후무한 성적을 올리며 결승까지 진출했고, 베트남 내에서 열기가 엄청나다는 뉴스는 전해들었지만 실제 호치민시티에서 느낀 열기는 듣던 것보다 더 엄청났다. 실제 이날 경기 결과는 우즈벡에 지고 준우승을 한 것이었는데, 졌음에도 베트남 사람들은 기뻐하는 것 같았다. 원래 호치민시티 교통
오늘날 중국 노동자운동의 전개와 우리의 과제 2010년 중국 광둥성 팍스콘(애플, HP, 델 등 세계 유수의 전자제품을 위탁생산하는 대만계 기업) 공장에서 노동자 10여 명의 노동자가 연이어 투신자살했다. 이들은 스무살 전후의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저임금 장시간의 열악한 노동환경, 군대식의 엄격한 노무관리가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으로 지목됐다. 비슷한 시기 광둥성 포산시에 위치한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에선 대규모 파업이 일어났다. 이 공장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어린 시절 사진이라는 것이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19세기 중엽. 스코틀랜드 사진작가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David Octavius Hill)은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아래 사진에서 남자 둘은 정면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다. 아마 옥타비우스 힐이 내내 스코틀랜드의 교회 공동체라는 범주 안에서 작업을 했으니 둘은 아마도 교회 공동체에 속한 주요한 인물들일 것이다. 역시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