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으로 빨려들어오는 텍스트 텍스트가 온 몸으로 빨려들어옵니다. 어제까지는 발터 벤야민 전집 속의 사진와 영화에 대한 예리한 텍스트들이었다면, 오늘부터는 플로뵈르와 발자크의 수려한 문체들. 그리고 내일은 한국 현대문학의 지리멸렬하고 자멸해가는 이야기들. 내 손가락들이 텍스트 안에서, 그리고 텍스트 사이사이로 휘감아져 쉴새없이 움직입니다. 점호 후에 불이 모두 꺼진 막사 안에서 랜턴을 켜고 읽는 책들의 글씨들은 꿈틀꿈틀 살아서
장 뤽 고다르 '자화상'특별전 『아워 뮤직』 <아워 뮤직> Notre Musique 장 뤽 고다르, 2004 4월12일 오늘부터 2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장 뤽 고다르 '자화상' 특별전이 열린다. 고다르의 영화들 중 최근작 세 작품---<JLG/JLG>(1995), <사랑의 찬가>(1999), <아워 뮤직>(2004)---이 상영된다. 군입대를 이틀 앞 둔 오늘,
인간 욕망의 희비극, 『시에라마드레의 보물』 존 휴스턴 회고전, <시에라마드레의 보물> 미국, 1948년작 감독 존 휴스턴 출연 험프리 보가트, 팀 홀트, 월터 휴스턴 멕시코의 탐피코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 주정뱅이에 가까운 실직자 미국인이 이 도시를 방황하고 있다. 때는 라틴 아메리카든 호주든 금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사람들이 떼거지로 몰리곤 했다는 골드러쉬의 시대인 듯 하다. 이 미국인
플로뵈르의 소설 『마담 보봐리』 사실주의 문학의 기원으로 돌아가보았다. 플로뵈르, 발자크…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위대한 문학가들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우리는 문학이론에서 흔히 발자크 이후의 문학과 이전의 문학으로 구분하기도 하며, 발자크 시대의 사실주의 문학과 발자크 시대 이후의 리얼리즘 문학을 구분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구분들"은 무수한 논쟁과 이론을 낳기도 했다. 플로뵈르의 <
존 휴스턴 회고전에서 『백경』을 봤다 <백경> Moby dick 감독 존 휴스턴 미국, 1956년작 출연 그레고리 펙, 리차드 베이스하트, 리오 겐, 제임스 로버트슨 저스티스 허먼 멜빌의 동명 소설 이 이 영화의 원전이다. 존 휴스턴은 그의 대부분의 영화들을 명작 소설들의 각색을 통해 탄생시켰는데, 그 중에서도 이 영화 <백경>은 영화화의 모범적 사례에 속한다고
엄마의 청소기 머리가 깨져버릴 것만 같았다. 잠이 들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저녁식사로 먹은 라면 때문에 속은 더부룩했고, 눈은 건조한 나머지 타들어갈 것처럼 말라있었고, 밤은 너무 싸늘하게 조용했고, 그럼에도 창문을 활짝 열고있지 않을 수 없었고, 지나간 기억들 중 불행한 일들만 자꾸 떠올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하고 싶은 일 없이 영화나 보고 책만
존 휴스턴 회고전에서 본 『말타의 매』 3월초부터 4월10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존 휴스턴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그의 수많은 영화들 중 엄선된 15편의 영화들중 총 5편의 영화를 보았는데, *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사적으로나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말타의 매>(1941), * 누아르 영화의 고전적 명작으로 프랑스 누아르의 거장 장 피에르 멜빌이 자기 영화의 원전으로 삼기도 했던,
미카엘 하네케의 1997년작 『퍼니 게임』 어느 평범한 중산층 가족, 부부, 그리고 어린 소년. 휴가 시즌을 맞아 별장으로 휴가를 간다. 그곳은 호수와 산으로 둘러쌓인, 전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그들은 뜻하지 않은 손님 둘을 맞이하는데, 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소통의 코드로 무언가 부러 자꾸 엇나간다. 그리고 잔인한 게임이 시작된다. 관객과 "영화"를 상대로 하는 전혀
전쟁, 이주, 언어라는 토픽을 관통하는 총체적 영화, 『미지의 코드』 <미지의 코드> Code Inconnu: Recit Incomplet De Divers Voyages 프랑스, 루마니아, 독일. 2000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줄리엣 비노쉬, 띠에리 누빅, 조세프 바이어비클러, 루미니타 게오주 미카엘 하네케의 2000년작. 구할 수가 없어서 못보고 있다가 EBS 세계의 명화에서 오늘(3월29일) 11시반에 한다는 기사를 보고 기다렸다가 보게 되었다. 항상 인간이 숨기고
건조하고 부조리한 인간세계와 한 당나귀의 생애, 『당나귀 발타자르』 당나귀 발타자르 Au Hasard Balthazar 프랑스, 1966 로베르 브레송 한 당나귀가 있다. 이름은 발타자르. 당나귀가 뭐라고 불려지든, 그것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다. 원래 그(녀)의 이름이 발타자르 였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영화 종반부까지는 대체 왜 이해하기 어려운 내러티브로 사건들간의 틈들이 보여지는지 알 수가 없다. 인물들의 감정도 따라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