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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사실 나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었다. 라캉과 함께였기에 약간 위로는 됐던 것이다. 나는 『철학교육평론』에 기고한 어느 글에 붙인 엉큼한 각주에, 마르크스가 '경제적 인간'을 거부한 것하고 똑같이 라캉은 '심리적 인간'을 거부했으며, 그것에서 엄밀히 결론을 끌어냈다고 썼다. 며칠 뒤 라캉이 나를 불러냈다. 우리는 여러 번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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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 대한 해석

덴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데 지쳤어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해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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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컴』 불법이주자들에게 우리가 빚지고 있는 것

오랜만에 광화문 시네큐브에 가서 영화 <웰컴>을 봤다. 이 영화에 대해서 그 어떤 수식, 찬사, 마케팅적 수사들도 어울리지 않으며, 충분하지 않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별로 내키지 않았으나, 극장을 나오면서 나는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3년 만이었다. 2006년 가을, 청춘을 무너뜨릴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 홀로 찾아간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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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킬로미터

해질녘부터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 걸었다. 네번째 40km행군이었다. 처음에는 구름이 가뜩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남원의 인적없는 길가에는 작은 불빛들만이 이따금씩 길을 밝혔다. 그러나 새벽 3시즈음이 되어선 밤 하늘 가득 무수한 별빛이 머리 위를 가득 메웠다.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에너지였다. 허리디스크도 디스크지만 스물일곱이란 나이가 그리 녹록치 않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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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을 둘러싼 책들

지난 봄 이사온 청운동집 2층에 위치한 내 방은 그 전에 살던 집보다는 훨씬 작아졌지만, 그만큼 아담하고 효율적으로 변한 것 같다. 나는 이런 효율성이 맘에 든다. 이런 효율성은 내 가슴 속의 텅 빈 느낌을 소멸시켜줄뿐만 아니라, 가면 안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방 안에서의 생활을 더 압축적이고, 진실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부모님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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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유령

여전히 나를 떠나지 않는 유령은 몇년이 흘러야 나를 떠날것인지. 내가 그때 이후로도 한참이 지났을때, 비관적인 감상에 젖어서, 석관동 단골 술집에서 재형이와 새벽녘까지 술을 마실때, 아주 한동안 서로 말이 없어서 조용해졌을때, 그땐, 아마 1,2년쯤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그랬는데, 왜 너 유령은 아직도 내 귓가에 악몽처럼, 아름다운 모습을 가장하고 머물고 있는지. 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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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는 Z

어쩌면 영원히 의문으로 남을 질문을 던져본다. 아니 이것은 확실히, 불멸의 질문이다. 언젠가 먼훗날에 사그라질테지만, 다시 무덤 속에서 스스로가 벌떡 일어나 무덤 속에서 저희들끼리 도스토예프스키의 유령들처럼 되살아나 웅성거리며 주절거릴 질문들. 현재에 당도한 주체가 이미 Z의 완결된 행위들의 기억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정확히 바로 그 기억을 소환하는 그 순간, 존재하지 않는 것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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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 거주지에서의 사죄

고되고 어두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며칠째 밤이 계속 되고 있었다. 예하부대 X대대의 모범병사 이은X 병장은 자신의 거칠디 거친 생활에 대해 하소연을 쏟아놓았다. 우리는 아주 늦은 밤, 아무 불빛도 없는 암흑 속 깊은 참호 속에 몇 시간째 대기 중이었다. 아무 소리없이 대대장이 나타나 왜 교대시간이 되었는데 계속 이곳에 있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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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시험장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 실기시험장에 갔다. 모두들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도 마찬가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나는 자격증 포상휴가를 위해서였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는 '자격증'이라는 이벤트를 이용해 20대의 정서불안을 자극한다. 가만히 있어도, 쉴새없이 토익책을 넘겨도 뒤쳐지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자격증을 따는 행위는 일시적인 안위를 안겨준다. 단지 플라스틱 조각 하나일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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