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킬로미터

해질녘부터 다음날 해가 뜰때까지 걸었다. 네번째 40km행군이었다. 처음에는 구름이 가뜩 끼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늘은 회색빛이었고, 남원의 인적없는 길가에는 작은 불빛들만이 이따금씩 길을 밝혔다. 그러나 새벽 3시즈음이 되어선 밤 하늘 가득 무수한 별빛이 머리 위를 가득 메웠다. 오직 그것만이 유일한 에너지였다. 허리디스크도 디스크지만 스물일곱이란 나이가 그리 녹록치 않게 느껴졌다. 이제 더이상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길이 내 인생에서 오직 격렬히 염원하는 세상으로 가는 역경이라고 믿겨지는 한에서만.
밤새 걸으며, 신념이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그런 절대적 믿음의 체계에 대해 왠지 모를 거부감 같은게 있었다. 나의 시선이 외부성을 갖춘 한에서 말이다. 그러니까 실은, 나야말로 진정 절대적 신념이라는 것의 형체를 알게 된 후에, 그것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고 아둥바둥 살고자했던 시절에, 내가 지닌 신념 체계가 아닌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적대적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요컨대 직업군인들 중에서는, '드물게' 절대적인 애국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군생활 동안 이따금 만나게 되는 그들을 보면서 '신념'이란 것의 일반적 의미에 대해 점점 빠져들게 된다. 오늘날 좀처럼 갖기 힘든, 그리고 거의 아무도 갖고 있지 않은 그 신념에 대해서. 아니, 실은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단 하나의 신념만은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다름아닌, '돈'이다.
얼마전 들어온 이등병 중 한 아해는 기독교적 신념이 무한한 아이이다. 여지껏 많은 기독교 신자들을 보아왔지만 그 아해는 스물두살이라는 나이에 갖추기 힘든 신념을 갖고 있다. 모태신앙이라서 교회에 그냥저냥 다니는 다른 아해들과 달리 바로 그런 아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전통적 의미에서 '유신론자'이다. 나는 그 아해의 생활을 바로 옆 자리에서 지켜보면서 신념과 일상이 맺는 어떤 복잡한 갈등양상과 관계를 보다 더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아해를 통해 나의 신념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 아해에 비하면 어딘가 나의 신념은 불안한데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나는 아직도 '돈'의 물질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일상의 습관들도 사물들에 얽매어있다. 단지 그 사물이 과거에는 클래식스쿠터나 신발 같은 것이었다면, 지금에 와서는 책과 클래식영화dvd로 바뀌었다는 것만 다를뿐이며, 어쩌면 실은, 책이란 것을 그것이 지닌 물질성을 점유하기 위해 집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다. 불행히도. 그런데 그 아해는 나보단 훨씬 자유로워보인다. 반면 그가 '신'이라는 대상에 대해 지니고있는 스스로 허락한 귀속은 그의 사상적 자유를 억압한다.
나는 이상하게, 그 아해의 사상을 깨뜨리고자 하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이따금 기회가 생길때마다 나는 그 아해와 한국 기독교와 유신론, 프로테스탄 윤리, 복음, 성경학, 강남의 부자 신도들이 보여주는 신념적인 모순성, 마가복음 따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대화하면서 공격의 틈새를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질문을 던지다가 내가 적실하게 공격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하고는 끝장을 보고만다. 지난 번의 논쟁은 거의 그 아해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시작하고 끝낸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점에서 나의 말걸기는 거의 신경증적이고 증상적이라 할만하다. 대체 나는 뭐하러, 그 아해의 신념을 무너뜨리고 싶어했던걸까? 의식적으로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이면성이 채운 가면을 가리기 때문에 철학적으론 유신론자일지언정 역사적으론 유물론자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서라지만, 정말 그럴 필요가 있는걸까? 차라리 기독교 신자이자 보수적인 칼뱅주의자일지언정(대화해본 결과, 그 아해는 지독한 칼뱅주의자이다!) 신념의 체계 안에서 사는게 역사적 차원에서볼때는 희망이 아닐까? 아니면 나는, 내가 잃어가고 있는 신념성으로 인해 그것이 드러내는 비겁하고 무서운 미래를 보지 않기 위해서 그 아해에게 나를 투영하고는 마치 나의 또 다른 자아를 공격함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신념의 상실이라는 외상의 충격을 빗겨가기 위해 '미리' 무신념의 삶으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내가 스스로 물질적인 안정성을 누리면서도 적당히 신념적인 것처럼 살고자 하는 도정에서 가시적으로 방해자라고 느껴지는 또 다른 신념자들을 억누르기 위한 정신적인 가학증자인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그 아해가 돈이나 물질들, tv 연예인들, 섹스심볼들로부터 나보다 훨씬,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 게다가 거의 프란치스코회적인 청빈함을 누리고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을 짖밟고 싶은 신경증적 충동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살면 내 삶은 정말이지 단지 전시적이고 신경증적인 것에 불과했었다는 것이 탄로나기 때문이다. 또는, 내가 빗겨가고만 고귀한 삶이 다시 자기파괴적으로 회귀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확실히 3년 전 이 맘때 학생회실을 나오면서 '그 삶'으로부터 탈각해있다. 그리고 지난 3년은, 인문학적 지식을 충족하는데 있어선 확실히 풍요로웠고 정신적인 안정을 누리는데에는 더 없이 평화로웠던 나날이었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있는그대로 누리는것에 있어서는 한없이 우스꽝스럽기 짝이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마 나는 그 아해를 공격했던 것이다.
야간행군을 하며 한 생각들이다. 앞으로 쓸 시나리오에 대해 생각하력 했는데 고작 생각한 건, 그것이 <만사형통> 초반 시퀀스의 특징적인 스타일을 닮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앞으로 찍은 단편들이 '나의 20대'와 '지금-여기'라는 하나의 테마로 묶인 시리즈이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오만가지 잡념들 뿐이었다. 그리고 거의 내내 나의, 신념들에 대한 가학성, 어쩌면 내가 회피하고 싶은 나의 신념을 향한 피가학성에 대해 생각했다. 깝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