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2일차에 본 단편영화들

2010년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2일차에 본 단편영화들

한달 여만에 또 휴가를 나왔다. 이제 복귀 후 13일, 일과로는 열흘만 보내면, 말년휴가이다. 거의 끝나가는구나. 밀리데이를 찍으면 정말 말 그대로 "2%" 남은 말년 병장. 어제 휴가를 나왔는데, 마침 영상원 영화과 졸업영화제 Rolling가 하고있었다. 26일부터 30일까지 롯데시네마 홍대입구에서 열린다고 한다. 작년에는 가지 못해서 너무 아쉬워하며 빡신 훈련 준비에 임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이렇게 혹한기 훈련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오니 기분이 너무 좋다.

첫 섹션이 시작한지 20분쯤 후에야 극장에 도착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한산한 편이었다. 영화관 앞에 다다르니 동기 형 두 분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정신없이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zahir>

첫 영화인 김새봄 선배의 <밤을 위한 춤>은 보지 못하고, 다음 상영작인 이루완의 <Zahir>부터 보았다. 이루완 선배는 나보다 한 기수 선배로 말레이시아에서 온 영화학도다. 이 영화 <zahir>는 부부간의 갈등과 어머니와 이별해야했던 남편의 어린시절, 그리고 축구심판이 되고싶은 아버지의 중재라는 소재로 뭉쳐진 영화다. 안타깝게도 짜임새가 허술했고 장르적인 전형성으로만 뭉쳐져있어서 확실히 공감도 덜 되고 사실성도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남자 배우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학교 다닐때 언뜻 봤던 선배였다.

<간만에 나온 종각이>

다음 섹션부터 네 개의 섹션을 연달아 봤다. 모두 14개의 영화다. 이루완 선배의 작품까지 15개이니 어제 하루는 완전 단편영화와 함께 하는 날이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번째 섹션은 전문사 졸업작품으로 <간만에 나온 종각이>(이상근 연출),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정주리), <Fly to the moon>(휘크리) 세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 만듦새가 뛰어났지만 특히 앞의 두 작품이 대단했다. <간만에 나온 종각이>는 어느날 어느 지하 수도공사 현장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벽을 부수는 공사를 하던 인부가 갑자기 벽 속에서 튀어나온 한 남자를 목격하며 시작된다. 믿을 수 없는 존재의 출현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영화 시작부터 하나의 약속이 전제되는데, 이마에 수돗꼭지를 달고 다니는 남자의 존재가 사람들에게 그다지 놀랍지 않게 인식된다는 점이다. 과거에 그는 조직폭력계와 연계되었다가 어떤 연유로 인해 이마에 수돗꼭지를 박혀 살해당하고 벽에 시멘트 발림 당했는데,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둔 채 떠나보내야했던 아픔이 있다. 이 영화는 이 기이한 존재의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데에서 시작하는 영화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살아있는 느낌이고, 설정 자체도 무척 재미있다. 또 종각이의 인물설정도 재미를 불러일으키고 있고, 종각이가 정신병에 걸린 옛 연인을 데리고 다니며 사랑과 기억을 환기시키려 노력하는 정성이 애뜻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마지막의 그 누아르적인 폭발은 여느 충무로 영화에서도 조직하기 힘든 종류의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다만, 어떻게 보면 수돗꼭지를 단 남자라는 설정을 제외하고는 새로울 게 전혀 없는 영화라는 점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짜임새 자체가 상업장르영화를 능가한다는 점은 확실한 장점이다.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

제목만 봐도 알겠지만 기형도의 시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한때 <기형도 전집>을 끼고 살던 나도 이 시를 기억한다. 매우 짧은 시다.

그날
너무 캄캄한 길모퉁이를 돌아서다가
익숙한 장애물을 찾고 있던
나의 감각이, 딱딱한 소스라침 속에서
최초로 만난 事象, 불현듯
존재의 비밀을 알아버린
그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갑자기 흰

어둠 속에서 배회하던 ("길모퉁이를 돌아서다가") 화자가 "익숙한 장애물을 찾고 있던"(그러니까 어쩌면, 예전에 어디선가 보았던 듯한. 또는 외상적인 기억 속에 남겨진 무엇을 증자적으로 찾던. 요컨대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정신적인 장애물들을 찾으려 발버둥을 치지 않는가.)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결국 '실재적인 지점'에 다다를때의 외상적 충격에 대해 기형도는 "불현듯"이라고 했다. 그것은 정말 "불현듯"이지 않은가. 우리는 모두 과거의 격정을 "불현듯"만나며, 상징계를 넘어선 실재계의 입각을 당황스럽게 마주하게 되지 않는가. 왜 실재계인가 하면, "존재의 비밀을 알아버"렸다고 했기 때문이다. 별 말이 없음에도 그 결정적 사태 앞에 우리는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존재의 비밀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얼마나 증상적인 사태인가. 그 견딜 수 없는 순간. 그런데 마지막 행에서 기형도는 "나의 플래시 속으로 갑자기 흰"이라고 했다. 아마도 "흰" 다음은 "개"일꺼라고 생각한다. 이 발화의 단절, '명사없음'의 고백이 주는 느낌은 내면 속에 감추어진 정신적 공황 상태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개'라고까지는 더 이상 말하기 불가능한 기억인건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만은 참고 싶은 것인가.

이 시와 동명의 이 영화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 역시 그런 사태에 대한 영화이다. 그것을 서사화시켜서 잘 조직해놓았다. 2년 전에 이 영화를 찍은 정주리 감독의 단편 <11>과 <영향 아래 있는 남자>도 본 적 있다. 두 작품은 그가 전문사 1학년때 찍은 작품인데, 둘 모두 어떤 강렬한 서스펜스를 갖추고 있었다. 이 영화 <나의 플래시 속으로 들어온 개>에서 강렬한 서스펜스가 있다. 영화에서 인물이 자신의 왜상을 들여다본다는 것에는 확실히 서스펜스를 필요로 한다. '간만에' 뛰어난 작품을 보았다. 그러나 아직 몇 작품 더 있다.

<Fly to the moon>

달리 할 말이 없다. 지나치게 전형적이며 배우들의 연기도 어딘가 허 했다.

<이십일세기십구세>

다음 섹션은 예술사 중급워크샵 작품들이었다. 2학년 2학기때부터 3학년 1학기 사이에 찍는 워크샵인데, 모두 다섯작품이었다. 동기생 작품으로는 정민이형의 <빛이 좋은 시간>만 있었는데, 후반작업이 되지 않아서 아쉬움이 많았다. 첫 작품은 12기 최아름 선배의 <이십일세기십구세> 였다. 이 작품은 내가 어제 내가 본 15편의 영화 중 단연 최고였다. 놀라운 일이다. 결국 걸작 하나 만들어내고야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리하는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풍자적이며 기개 있게 담아냈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습하는 학생들이 빼곡한 교실을 들여다볼때 자신이 꿈꾸는 교실의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과 방송실에서 보여주는 제스츄어는 정말 전율적이었다. 전자에서 오른쪽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나와 관객을 향해 카메라를 찍는 것, 자체도 하나의 도전적 표식처럼 느껴졌다. 흔히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는 대단히 폭력적으로만 느껴질 수밖에 없는데, 이 장면에서는 어떤 패기있는 도전, 하나의 새로운 여정에 대한 표식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이렇게 상상하는 것조차도 구경하고 있는 당신들에 대한 '반사'같다고 해야하나? 왜 그녀는 굳이 카메라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대는가.

<신선한 공기>

불편한 타인에 대한 영화이다. 이 영화 뿐만 아니라 "불편한 타인"이라는 테마를 갖고 있는 영화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속좁은 여학생>, <Fly to the moon> 등.) 예측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급변이 도래한다. 말 그대로 테러인데, 정말 이래도 되는건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 대한 조소인듯하면서 자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마도 곧, 주인공도 그런 약탈자가 되고말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왠만하면 영화를 윤리적인 심급으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이 영화에 대해선 자꾸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찍다가 고심이 많이 생겨서 우발적으로 이렇게 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나도 예전에 그런 적이 있어서. 확실히 자기파괴적이다.

<30걸스>

전제가 제거되어서 아쉽다. 이해는 되지만, 고교동창인 세 친구가 어떻게 해서 노래방에 가고 노래를 부르는 연습을 하게 되었는지가 없어서, 전체적으로 뭔가 영화를 중간부터 본 느낌이 난다.

<다시, 안녕>

한 컷짜리 영화라는 점에서 확실히 흥미로웠다. 침대 맡에 앉은 여자가 끊임없이 쉴새없이 자기 이야기를 혼자 떠들어내고 있는데 카메라는 아주아주 천천히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로 천천히 뒤로 빠진다. <Last days>가 생각난다. 그리고 결국 침대 전체와 환자실이 풀샷으로 물러났을때 관객은 여러 정황들을 알 수 있게 된다. 확실히 이런 실험은 그 실험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특히나 이 영화가 죽음의 순간, 그리고 여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에 바탕을 둔 작품이라는 점에서 실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갑자기 부철이형이 출현하길래 나는 그가 경찰이라기보다는 영화 스탭인줄 알았다. 그래서 그 순간에는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한 재현이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재투옥이라는 설정말고 다른게 낫지 않았을까. 모르겠다. 제일 무난하다는 생각은 든다. 그러나 이런 실험이 매번 신선한 것은 아니다. 다음번에는 확실히 식상함을 느끼리.

<유월>

<유월>은 한 여자가 죽어가는 자신의 불문학과 스승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의 '대화'이다. 은지선배의 졸업영화다. 뭔가 분위기와 리듬이 은지선배다운 영화. 학생영화스럽지 않게 진지하고 성찰적인 영화이다. 죽음과 삶. 앞으로의 여정. 그런데, 그런데 여주인공은 너무 빨리 늙어버린 것은 아닐까? 저토록 성숙한 스승을 너무 어린 나이에 만나버려서. 우리에겐 보다 더 격정적인 갈등과 아픔이 필요한데.

<결정적 순간>

병진이형의 영화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와 찍히는 대상 사이의 관계가 영화과 학생이라는 설정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에 의해 매개된다. 그녀가 복원하려는 것의 '거짓'(사라진 남편이 사실 지금은 남극에서 일하고 있다는...)이 결국 보장해주는 건 무엇인가. 이마저도 모르는 채로 남겨지는 노숙인 남성은 그냥 면소된 자로 남겨질 것이며, 매개자에 의해 '거짓' 현실을 보고받은 부인은 일상의 뒤틀림을 다시 겪어야만 할 것이다. 어린 딸만이 어떤 안정감과 기대를 갖게 될텐데, 그렇다고해서 모든 상처가 극복되는건 아니다. 도리어 더 심한 증상들을 낳을지도 모른다. 결국 사진은 거짓말을 하고 관계를 위장한다는 것에 대한 비뚤어지게 보기인가?

<속좁은 여학생>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사르트르의 명제를 유머러스하고 섬세한 방식으로 꼬아넣은 작품이다. 이마가 좁고 속도 좁은 여학생 안다정은 매주 한 교시 공강시간에 544강의실에 가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날은 "친구들을 왕따시키고" 그냥 떡볶이를 먹으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남학생이 들어온다. 지옥은 시작된다.

어제 상영한 작품들 중 관객들의 호응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다. 매끄럽고 뛰어나며 연출력도 섬세하다. 타이틀 등장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설정, 인물의 캐릭터까지. 그리고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아무리 영상원 졸업영화라도 이런 영화들은 다른 학생영화들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해있다. 위에서 언급한 다른 몇몇 작품들도 마찬가지이다. 촬영도 군말이 필요없는 수준으로 완결성을 지닌 듯 하다.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인정. 아마 대중적으로도 높은 호응도를 보일 것이다. 그만큼 재미있다. 왜 이 작품은 "영상원 추천작" 목록에 들어가 있지 않은거지? <이십일세기십구세>도 마찬가지. 아직 보지 못한 다른 작품들이 이거보다 더 뛰어나다는건가?

<북소리 일일야화>

마지막 전문사 재학생 중급 섹션. 세 작품이 있는데 <북소리 일일야화>가 그중 가장 흥미로웠다. 북소리의 리듬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영화이다. 갑자기 화려한 와이어액션이 등장하며,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대사를 날리는 배우들의 연기가 재미있다. 마무리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Sixteen>

어린시절의 증상적 기억과 칼. 아버지 살해라는 양식을 16세 여학생의 것으로 돌려놓은 이야기이다. 굉장히 떼깔나고 돈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tv와 스크린에서 많이 보던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마냥 신기했다.

<Whoever you are>

감정이입이 안 되었다. 남자배우의 연기가...... 견디기 어려웠다.

어제 본 열다섯 작품을 전체적으로 총평하자면, 3년 전이나 2년 전에 비하면 훨씬 뛰어났으며, 이 중 추천작이 하나도 없는걸 감안했을때 대체로 뛰어난 작품이 많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불편한 타자"와 "증상적 기억과 죄의식", 그리고 "찍는다는 행위"를 에두르고 있었다. 2일차 상영작 열다섯작품들의 공통태그어는 죄의식, 타인, 대상, 왜상. 그래서 그런 점으로 따져보면 <이십일세기십구세>(최아름 연출)가 유난히 독보적이었다. 그냥 내 취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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