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일만에 서울에 왔다

100여일만에 서울에 왔다. 엄마는 고독한 미소로 나를 맞이하며 택시비를 지불해주었다.

약속 시간이 늦었지만 엄마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난 이것을 모두 먹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꾸역꾸역, 말라 비뜰어진 밥숟갈 위에 냉장고 속에서 오래있던 멸치덩어리들과 눌러붙은 김들을 싸서, 천천히 씹어먹으며, 엄마의 말을 듣는다.

엄마는 가난한 목소리로 자신의 오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마전 엄마는 마당의 돌계단 위에서 미끄러졌다. 손가락이 거꾸로 비끄러졌으며, 인대가 이마안큼 늘어난 사연. 의사는 2개월간의 입원기간과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숨막히는 병원냄새와 옥죄인 일상이 혐오스러워 엄마는 모든걸 거절하고 치자떡을 손가락 위에 둘둘감아 호일로 감아놓고 그 뼈저리는 고통을 인내하며 오늘의 권태를 살아내고 있다. 아무리 병원이 싫어도 수술을 요할 정도로 아픈건 치료해야하지 않느냐는 내 말에 엄마는, 민간요법을 믿는 것이면 그것말곤 다른 도리가 없다며 고집스럽게 이야기한다. 나는 다른 할 말이 없다. 엄마의 고독은 너무도 깊고 진해서, 그 깊은 고독을 나는 치료하거나 위로해줄 길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마주한 엄마의 오늘은 권태에 이은 고통. 그리고 맞이하는 노년. 내후년에 엄마는 육십이다. 나는 서른이다.

밤 11시반에 만난 아버지는 지쳐서 잠든 모습이다. 서재의 불은 켜져있고, 그 불을 끄는 것도 잊은채 그대로 잠들었다. 허벅지의 살은 반쪽이 되어 홀쭉해졌고, 머리는 온통 백발이 되어있다. 그는 오늘도 지친 일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있다. 삶은 그에게 인내와 반성을 요구한다. 오늘날 모든 중년 남성에게 그러하듯이 말이다. 오늘 아버지는 쉰일곱이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방안에 들어선다. 십여년째 둘은 따로 떨어진 모습이다. 이 오늘이 더 평창동 549번지 이 집을 고독하게 만든다. 차오르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이 마음 지울길 모르겠다. 오늘이 너무 슬프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내 책임이 너무 크다. 슬프다. 핑계댈 무덤없는 내 청춘에 후회의 색깔이 덧칠된다. 그러나 이 역시 무책임한 고백일 뿐이다. 이십대 후반이 이토록 서글플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알았다면 열배는 더 부지런하고 독하게 살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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