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호 영화 “행복”

허진호 영화 “행복”

영화 <행복>은 한 중년 남자의 어떤 여정 같은 것을 그린 영화이다. 영수(황정민 분)는 유부남으로, 방탕한 생활에 과격한 말투, 게다가 분별없는 연정들까지 뿌리고 다니는 그야말로 망나니같은 남자이다. 그가 '경영'하는 서울의 모 유흥주점은 그의 이런 타락에 빠진 삶의 어둡고 속물적인 면모들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그런데 어느날, 영수는 자신이 지독한 간염에 걸리게 된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에 어떤 회의와 비루함을 느낄만한 시기가 그에게도 온 것이다.

영수는 시골의 어떤 요양원 같은 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는 죽을 병에 걸린 여러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게 되고, 자신보다는 훨씬 젊어보이는 은희(임수정 분)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시골 전경, 산뜻한 공기마저 느껴지는 넓은 산 위의 들판, 이 모든 것들이 쾌쾌한 연기가 가득한 서울의 밤과는 대조적인 공간으로 제시된다.

마치 '꿈'의 공간과 같은 사랑에 빠진 둘은 동거를 하게 된다. 지독한 폐병 환자인 영희, 그리고 중년의 간염 환자인 영수가 서로의 병을 치료해주며 사랑을 키워나간다는 설정인데,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둘의 파국을 맨 처음부터 암시하듯 불안하게 펼쳐진다. 따라서 서사의 초점은 사랑의 전개보다도 인간의 죽음(들)과 그 삶을 관조하는 영수의 어떤 태도 같은 것에 맞추어진다.

영수는 현실적인 인간이며, 흔히 볼 수 있는 한국 남성의 어떤 비루한 처지를 대변해주는 인물이다. 그는 결국 순수와 사랑과는 필연적으로 결별하며, 비정하게 돌아서서 이상(사랑-무일푼의 삶-시골)으로부터 현실(가정이 있는 남자, 돈, 도시)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된다.

비루해질 수 밖에 없던 결말은 결국 신파로 빠지지 않기 위해 어떤 결절점을 만들고 마는 것 같다. 이건 애초에 영화 초반 15분의 전개로서 그 자체로 예고되어있던 약점이다. 이 점을 두고는 뭐라고 평하고 싶지 않다. 특히나 결말부에서 툭툭 끊기는 전개가 느껴지는데, 이 점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년 남자 감독은 이 비루한 비극적 현실에 대해 유연하고 능글맞게 매듭지을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결국 영화 <행복>은 한국의 중년 남자들이 빠진 필연의 함정 같은 것을 무의식적으로 전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식의 결절점은 멜로로서의 <행복>뿐만 아니라, 최근의 한국 영화들에서 늘 드러나있던 점들이라는 것에서, 지난 세대의 어떤 한계같은 것이 느껴진다. 뭐하러 비루하게 멜로드라마로 이런 얘길 한단 말인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이 불쌍하고 처연한 중년남성들의 운명들에 대한 멜로-서사에 대해서 위로해줄 여유와 시간이 없음이 분명한데. 영화는 비루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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