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트뤼포의 <부드러운 살결>

프랑수아 트뤼포의 영화를 거의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처음 보았다.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마이티 아프로디테"라는 주제로 시네바캉스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데 이 중 트뤼포의 영화들도 몇 개 상영되고 있다. <마지막 지하철>, <이웃집 여인>, 그리고 이 영화 <부드러운 살결>. 앞의 두 영화는 80년대 초반에 만든 말기작이고, 이 영화는 초기작 중 하나다. 트뤼포의 실제 연인이었던 프랑수아 돌리악이 출연하며, 진 데사일리가 남자역으로 나온다. 게다가 촬영은 라울 쿠타르이다. 그날은 일을 마치고 앞의 30분을 잘라먹고 영화관으로 들어가서 뒤쪽 좌석에 앉아서 보았다. 아후, 가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이날 본 이 영화가 내게 충격적이었던건 단순히 영화의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영화는 주인공이 유부남이고 또 유명한 영화감독? 아니면 영화평론가? 그런 사람인데 이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또 별거를 하다가 부인이 그걸 알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별거를 선언하게 되지만 정부와도 결별하고 고독한 신세가 되어서 다시 한번 부인에게 전화를 하는데, 그 전화는 결국 어떤 기묘한 시간차로 불발된다. 그러나 마침 그때 부인은 남편이 있는 그 카페에 들어온다. 우연의 일치로. 그러나, 정말 기이하게도 총알이 든 장총을 들고. 삶의 시차적 간극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지점이면서, 또 부쳐진 편지는 반드시 도착한다, 는 라캉의 명제를 떠올리게도 한다. 부인은 남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그 전화를 받지 못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으로 그 메시지를 받았다고 볼 수도 있다. 여자의 복수는 남편의 끊임없는 도착증적인 방황 상태를 종결짓는 진정한 사랑의 표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남자는 처음부터 이런 종결을 예고하고 요청하는 행동들만 일삼았다. 파국을 두려워하면서 파국으로 치닫는 결정들만 내리고, 이성의 명령에 완전히 반하는 행동들만 한다. 이런 면모는남자가 완전히 '이성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캐릭터로 등장하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나는 영화를 보고나서 재형이와 정인이랑 종각역 근방의 '육미'에 가서 술을 마셨다. 지금 기분이 이래서 이렇게 기억하는 것일수도 있는데, 그날 술자리는 마치 죽은 다음에 유령이 바로 저승으로 직행하지 않고 남아서 떠돌다가 친구랑 술마시면서 하는 얘기처럼 너풀너풀 날아다녔다. 다 늙어 죽은 노인 유령처럼 말이다. 그만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가 날리는 총알 한방은 내 심장에 박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내게 더 쇼크를 주었던 건, 그날 그 영화관에서 영화를 볼때, 내가 저 남자친구처럼 상처를 주었던 옛 여자친구가 다른 쪽 좌석에서 그의 새로운 남자친구와 앉아있었다는 점이다. 너무 충격적인 경험이라서 영화가 끝나고 나는 재형이를 멍하게 보고 있었다. 재형이는 막 웃었다. 대체 트뤼포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만든 걸까? 이 영화의 내용을 보노라니 이것 그의 실제 경험에서 바탕을 둔 시나리오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르주 투비아나와 앙투안 드 베크가 쓴 무지 두꺼운 프랑수아 트뤼포의 '전기' <프랑수아 트뤼포 : 영원한 시네필의 초상>을 보면 그 대목이 나온다. 트뤼포는 여자들을 너무 많이 만나고 또 금방 정처를 찾지 못하고 헤어지기를 반복해서 그의 부인과도 결별과 만남을 반복하게 된다. 한때 그는 저 유명한 프랑스의 여배우와 사랑에 빠져 그녀와 함꼐 동거하겠다는 생각으로 파리의 한 거리에 아파트를 구입하는데, 그 순간 그녀는 트뤼포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그때 트뤼포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었다고 한다. 이때 이미 그는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한 아내의 남편이었다.
그런데 <부드러운 살결>은 자신의 이런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온다. 자기 자신이 지닌 모순성과 편력, 파괴적 면모들을 드러내고, 또 그 자신의 우울하고 멜랑콜리한 면모까지 모두. 그래서 이 영화는 자전적 성격이 강하고, 마지막 결말은 이상한 파국을 욕망하는 것처럼 그려져서 뭔가 그의 다른 영화들보다 더 정신분석적인 시선으로 보게 만든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영화를 찍은걸까? 그것도 자기 자신의 파국을 들여다보면서. 기이한 사람이다. 그의 필모그라피가 일정하게 걸작만 만들지는 못했으면서도 그가 영원히 어떤 고유명의 기표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런 지점들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삶 자체를 영화로, 영화를 삶으로 생각하고 둘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다. 나는 작년에 군대에서 저 책을 봤을때처럼 이 영화를 보고 쇼크를 받아서 한동안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나는 대체 어떻게 살고있는지, 잘 살고 있는지, 앞으로는 잘 살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할지.

이 영화는 놀라운 결말을 보여준다. 여성이 총을 쏘고나서 아무 군더더기없이 바로 FIN 세 글자를 박아버리는 건 정말 트뤼포만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총에 맞은 남자 피에르에게 아무 페이소스도 허용하지 않고서, 완전한 결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찍었는지 짐작케 한다. 그건 일종의 자기 자신에 대한 단죄 혹은 죽음을 향한 충동을 드러내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나 그 누가 이것마저 자기 치장이라고 여기겠는가. 또 동시에 영화 내내 부차적 역할인 것처럼 드러났던 부인이 남편을 죽이고나서 이렇게 정면 클로즈업으로 잡히면서 원샷으로 비장하게 끝나는 것도 참 독특하다. 이 여인을 부차적 존재로 전락시키지 않게 만들고 있고, 또 그녀의 슬픔에 대해서도 들여다보게 만든다. 카메라가 빛을 발하는게 이 결정적 지점이고,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역시 라울 쿠타르! 역시 트뤼포! 그만큼 이 영화의 종결이 드러내는 리듬은 기괴하고 정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