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트뤼포의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

프랑수아 트뤼포의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1971, Two English Girls and the Continent)
연출 프랑수아 트뤼포 François Truffaut, 출연 장 피에르 레오, 키카 마크함, 실비아 메리어트

오랜만에 서울아트시네마에 갔다. 다리가 부러졌기에 버스를 타고 힘겹게 목발을 짚으며 가야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신경쓰였지만, 오늘도 집에 하루종일 있었다간 못견딜것만 같았다. 요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영화제가 진행중이다. 무려 27일간, 시네마테크의 후원과 대중적 선전을 위해 한국의 유명 감독들이 의식적으로 만든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주최가 되어 진행되는 영화제다. 매일같이 감독, 배우들이 한 명씩 GV를 진행하면서 자신이 관객들과 꼭 보고싶은 영화를 추천해 영화를 보고 1시간가량 대화를 진행한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후기 작품들 중 하나인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은 오늘 GV로 상영된 <라탈랑트> 이전에 상영한 작품이다. 3시반쯤 시네마테크에 도착하고 곧바로 티켓을 사고나서 4시부터 이 영화를 보았다. 그곳에서 우연히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도 인사하고 영화도 보니 간만에 기분이 좋았다.

영화는 소설 처럼 진행된다.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들의 나레이션으로 종종 등장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의 나레이션이 있고, 그 나레이션이 영화 스토리 자체를 진행해나간다. 때때로 나레이션은 인물들의 감정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도 하고, 관객들의 주체적 감정들에 무작위로 개입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아예 빗겨나갈 여지를 주지 않는 영화이다. 소설 그대로를 영화화한 것만 같다.

프랑스적인 삶과 영국적인 삶의 대비, 파리시민의 사고방식과 런던시민의 사고방식의 대비, 남성과 여성의 대비, 사랑과 배신, 질투의 대비, 육지와 바다의 대비가 이야기의 축을 이룬다. 그것들을 돌돌 뭉쳐서 김밥말듯 말아놓은 영화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순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가 그저 싫지는 않았다. 우선 프랑수아 트뤼포 특유의 생경한 유머들때문에 아예 영화를 그것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기에, 완연한 거부감이 들지는 않게한다. 다만 나레이션이 너무 잦고, 씬과 씬의 연결이 소설의 작은 문단들이 넘어가는 것처럼 잦아서, 오히려 숨가쁘게 느껴졌다. 해안을 배경으로한 영국의 어느 바닷가 마을의 서정적인 배경, 파리, 스위스의 오두막… 그럼에도 스토리 자체의 숨가뿜때문에 이미지 대신 목소리와 대사에 주목하게 된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고나면 영화라기보다는 친절한 영상-소설을 본 느낌이 든다.

21세기 남한에서 20세기 프랑스 감독이 만든 19세기의 사랑이야기를 접한다는 건 많은 공백을 만들어낸다. 난 최대한 감안하면서 봤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까? 어쨌든, 사랑과 인간성이 지닌 모순성에 대한 통찰은 인정할만하다. 다만 지나치게 프랑스적이다! 고다르가 70년대에 트뤼포 영화를 무진하게 비난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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