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도 추악한 자들에게 바치는 편지

평범하고도 추악한 자들에게 바치는 편지

오늘 밤도 잠들긴 글렀다. 요즘 한국에서 들리는 주요 뉴스들 중 하나는 삼성이 최근 그룹 내외에 만들어진 노동조합을 말살하기 위해 어떤 짓을 해왔는가에 대해 하나둘씩 밝혀지는 사실들에 관한 것이다. 박근혜 게이트 관련 압수 수색을 하던 검찰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6000여 장에 이르는 노조 파괴 문건으로 인해 그간 수면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지고 있다. 특히 2013년 여름 만들어진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련 소식들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한 삼성 자본의 악랄한 탄압은 그보다 몇 년 전에 드러났던 'S그룹 노사 문제 대응 문건'에 담겨 있던 문구들의 구체적 실체를 보여준다.

물론 이들 문건이 모든 진실을 담고 있진 못할 것이다. 아직 검찰에 의해 공개된 사실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문건들이 어떤 것을 담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게다가 노동자 개개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펼쳐진 '노동자 죽이기 공작'은 그 문건에 담길 수 없을 정도로 악랄한 것이었다. 두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수많은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앗아갔으며, 삼성에 매수된 장학생 검사들을 동원해 수십 명을 전과자로 만들었다. 당시 서초경찰서를 포함한 일선 경찰들 역시 이 공작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 문건으로 인해 이 치졸하고도 악랄한 공작의 모든 것이 밝혀지진 않을 것이다. 어떤 자들은 비겁하게 숨을 것이며, 어떤 자들은 또 다른 장학생들을 동원해 죄값을 받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를테면 검찰이 염호석 시신 탈취에 얽힌 역겨운 공작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할지, 혹은 그것을 파헤칠 의지가 강하게 있는지, 알게 되더라도 그것을 공개할지 미지수다. 또한 당시 되려 20여 명의 동료 노동자들을 체포하고, 2명의 노조 간부를 구속한 것과 관련된 삼성 장학생 검사에 대해 죄값을 물을지 미지수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검찰 자신의 추악한 면모를 파헤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국의 낯선 도시에서 들리는 이 뉴스들은 내 일상의 평온을 해친다. 또 하나의 '단독' 뉴스를 보고나니 숨겨놓았던 울분이 다시 나를 뒤흔든다. 치욕스럽고 분노에 찼던 매 순간 하나하나 똑똑히 기억하기 위해 뇌리 깊숙히 새겨놓았던 역겨운 자들의 얼굴들, 이름들이 생각난다. 삼성 자본과 노조 파괴자들에 동원되어 거짓 기사를 써내렸던 보수언론과 경제신문들의 쓰레기 기자들, 취재하기를 회피하며 내게 자신과 통화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했던 나의 대학 선배, 삼성 장학생을 자처하던 검사, 시신 탈취를 적극 동조한 경찰들, 삼성전자 사옥을 철통같이 지키며 그것이 자신의 직업적 사명이라고 여기던 용역깡패들 얼굴 하나하나, 나를 지목해 7번 기소하며 그것이 정의 경찰의 사명이라 여기던 눈먼 경찰들. 모두 이 추악하고 거대한 살해 공작의 한 패거리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자신의 추악한 과거를 반성할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공작에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오늘밤도 친구와 다정하게 술을 마시고, 자상한 아빠의 행색으로 자식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훈계할 것이다. 혹은 삼성에게 인정받은 잘 나가는 기자, 혹은 기자 출신 홍보팀 직원의 행색으로 두둑한 월급 봉투로 값비싼 맛집들을 전전하며 인스타그램에 인증 사진을 올리거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추악해져가는 주름을 화장품이나 경락 마사지로 펴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사람의 얼굴을 들이밀며 아름다웠던 과거를 회상하곤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데, 단 한 번뿐인 당신들의 삶은 이 세상과 당신 자신에게 있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것에 불과해졌다는 사실이다. 당신들은 가루가 되어 태평양 바다 깊은 곳 어딘가에 묻히고 흩뿌려진 청년 노동자 염호석의 삶에 큰 빚을 졌다. 그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며, 당신들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건 당신들은 그것에 일조했다. 노조 파괴 문건이 6천여 장이라고 하니, 앞으로도 얼마나 더 진실들이 밝혀질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우리들의 울분에 찬 기억은 점점 흐려지겠지만, 이와중에도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것이 나의 책무라고 여기며 이 편지를 쓴다. 나는,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의 얼굴과 이름을 결코 잊지 않았다. 당신들에게는 죽는 순간에조차 '인생은 아름다웠노라' 따위의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부디 이들에게는 가혹한 자기 혐오와 무지의 벌을, 사람답게 살고자 싸웠던 노동자들에게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꿈만이 남기를,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들의 삶에 축복만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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