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알모도바르의

페르도 알모도바르의 영화 <라이브 플래쉬 life flash>를 보았다. 지금까지 알모도바르의 영화들은 왠지 모르게 계속 보기를 미루었는데, 그건 어떤 낯설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떤 감독의 영화이든 그것에 다가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별 특색 없는 영화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알모도바르처럼 자기만의 색깔과 스타일을 갖고 있는 작가들의 영화들은 확실히 그렇다. 나는 내가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거의 본 게 없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다.
1970년 어느 날 밤. 스페인 마드리드의 도심 한복판은 개미 한마리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프랑코 독재의 끝 즈음이다. 한 여인이 산통을 호소하며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영업이 종료된 버스에 올라탄다. 그 버스에서 태어난 아기가 빅또르이다. 아기가 태어나는 그 순간 카메라가 마드리드의 밤 전경 비추면서 타이틀이 뜨는데 그 자체로 정말 장관이다.
이 영화는 한 사람(남자)의 탄생, 사랑, 복수, 젊음,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컨대 삶 그 자체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고, 또 젊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엘레나라는 여인에게 첫사랑에 빠진 스무살의 빅또르는 또 다른 치정에 얽혀 6년 간의 감옥살이를 하고, 그 사건에 얽혔던 네 명의 또 다른 남녀는 제각각의 사랑과 복수에 얽혀 뒤틀린 운명을 겪는다. 이 영화는 그 전체를 리얼리즘적으로 풀어내는 작품이다. 누군가가 다른 한 명의 사랑을 '쟁취'하려고 하면 그 사랑은 또 저 멀리 도망치고, 도망친 사랑은 복수가 되어서 다시 되돌아온다. 70년의 탄생, 90년의 사건, 92년의 삶, 그리고 93년의 결말로 이루어져있고 그 복잡하게 얽힌 삶의 관계망을 우아하게 따라간다.

마지막에 산초와 클라라 부부가 비극적으로 서로에게 총을 쏘고 죽음을 맞이할때 산초가 죽은 클라라의 시체를 향해 기어가며 "이게 내 팔자야. 당신을 향해 다가가는 삶"이라고 말하는데, 그 간극이 이렇게 비극적 장면에서 좀 코믹하게 드러나서 인상적이었다. 카메라의 시선이 뒤로 빠져서 모든 파토스의 잔여물을 제거하고 우리의 삶이란게 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기가 막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산초가 집 안으로 들어온 빅또르에게 말한다.
"그날 밤 널 끝장냈어야 했는데. (잠시) 쏴. 뭘 망설여? 이번에도 내가 대신 쏴 줄까?"
그러자 빅또르가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넌 내 인생의 6년을 앗아갔어."
이는 빅또르가 젊었을때 산초 때문에 감옥살이를 6년간 했던 것을 말한다.
"넌 내게서 더 많은 걸 빼앗아갔어."
"끌라라는 네 것이 아니었어"
"네 인생도 네 것이 아니었어. 누구도 젊음이나 사랑하는 여자의 주인이 될 순 없어."
에필로그 : 하비에르 바르뎀은 저 멀리 마이애미에서 헤어진 전 부인 엘레나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깔리며 엘레나와 빅또르가 보인다. 엘레나가 산통을 느끼며 유치원에서 나오는걸 빅또르가 부축하며 밖으로 나오고, 엘레나는 다시 1970년의 빅또르가 그랬던 것처럼 겨울 도심 거리 한복판 차 안에서 아기를 낳는다. 빅또르가 자신의 아기에게 전하는 말이 참 재밌다.
"아가야, 조금만 참아라. 잘하고 있어… 지금 네 기분이 어떤지 알아. 아빠도 26년 전에 버스에서 태어났거든. 한데 네가 운이 더 좋구나. 세상이 많이 변했거든… 저 사람들 좀 봐.. 내가 태어날 땐 거리에 개미새끼 한 마리 없었어. 사람들은 집에 들어앉아. 두려움에 떨었지. 넌 운도 좋구나, 아가야. 스페인에선 오래 전에 두려움이 없어졌단다." FIN.
프랑코 독재와 스페인의 새로운 삶들에 대한 기이한 환기처럼 느껴진다.
거시적 역사 안의 미시적 삶, 그리고 우연같은 필연의 충돌들.
인상적인 장면,숏 중 하나. 영화 초반의 느릿느릿한 크레인숏.

저 멀리에서 크레인이 버스 앞까지 아주 천천히 다가가서 버스 안으로 다가간다. 버스 안에서는 '역사적 비극'의 종착 지점에서 태어나는 한 아기의 삶이 잉태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비극'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퀀스. 직부감으로 도심의 거리를 내려다보는 카메라. 역시나 비극'들'이 있었고, 또 다른 삶이 여기에서 잉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