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궁금증을 참기 어려워 <인셉션>을 보았다. 그것도 개봉일인 21일 아침 10시 조조로 말이다. 나로서는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태도다. 아니, <마더>에서 그와 비슷한 짓을 하긴 했으니 패쓰. 어쨌든 기대만큼 재미있었고, <다크나이트>만큼 깊이 있진 못하지만 서사의 층위가 워낙 복잡하고 중층적이라서 할말이 참 많은 영화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다크나이트>만큼은 아니다. 확실히 <다크나이트>보다는 말초신경을 더 자극하긴 하는데, 그런만큼 조금 더 빨리 잊혀진다. 그래, 그래. 다만, 다만... '재미'가 오직 스크린에 집중하고서 관람을 지속시키는 태도를 의미한다면 전작보다 좀 더 재미있다. 캐릭터에게 욕망을 유발하는 고리들이 상당히 많고, 그 근거들이 꽤나 합리적이며, 짜임새가 있게 느껴진다.

이 영화의 주된 재료는 프로이트이다. 코브는 영화 처음부터 증상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그것이 꿈에서의 여러 이미지들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코브가 괴로운 것은 오직 꿈 때문인데, 자꾸 꿈에 아이들과 죽은 부인 맬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반대로 말할 수도 있다. 와이프였던 맬이 죽었고 아이들을 볼 수 없었던 채로 작별했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고 그래서 계속 꿈에 나오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런 식으로 현실과 꿈을 역, 혹은 역의 역으로 치환해서 한 가지를 다른 한 가지 세계에 투영시켜 바라보는 태도가 이 영화에서 모티브들이 작동하는 에너지이다. 이미 시점 자체가 다른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노출되어있다. 그래서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코브가 과연 앞으로는 행복할런지 말이다. 그는 모든 사건이 해결됨으로서 한가지 증상을 치유한 것처럼 보이지만, 앞으로 또 다른 충격이나 상실을 겪는다면 어떻게 될까?

또 무의식 안에 빠져들어간다는 설정에서 어느 정도 작위성이 느껴지고, 그 기계가 대체 얼마나 대단하길래 연결만하면 서로서로의 꿈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인지를 생각하면 좀 억지스러운 면이 있긴 하다. 설명을 안해주고 시작하는 건 나쁜건 아닌데, 이미 그 기계가 지닌 고유한 작위성 때문에 서사로 발휘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한 부분도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동시대성'도 아예 탈각한 채 밀고나가는 서사를 갖고 있기도 하다. 다만, 그냥 무시하고 본다면 참 재밌게 빠져들어서 볼 수 있는 영화이니, 한여름의 무더위를 살얼음과 같으며 종종 냉장병을 유발하는 멀티플렉스 에어콘바람과 더불어 저 머리 속 복잡하게 만들며 머리 속에서 주판 알 튕기게 만드는 쾌속 블록버스터 영화를 볼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보면 된다. 어쨌든 촉망받던 크리스토퍼 놀란으로서는 약간의 후퇴이지만, 재밌으니 그만이라면 그만이지, 뭐. 그런 점에서 일반적으로는 아주 과대평가받을 여지가 많다. 지금 네이버 평점만 봐도 9.23이다. 그러니까 봐도 나쁘지 않고, 굳이 꼭 보지 않아도 된다. 개인적으로는 8.3정도 주고 싶다. 왜냐하면 난 이런 SF블록버스터를 좋아하니까. 여러 화려한 출연진 중에서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멋졌지만, 톰 하디가 더 멋있었다. 킬리언 머피는 참 좋은 배우인데, 이번에도 좀 밍숭맹숭했다. 자기 영화가 아닌 영화에 왜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다.

Subscribe to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