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맥 매카시의 소설 『The Road』

작년 초가을에 영문판을 읽고, 뭔가 정체불명의 전염병에 걸린 것처럼 건조해진 마음을 애써달랬던 기억이 난다. 입대 전에 코엔 형제가 만든 걸작 <노인을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고 감독과 작가에 대한 무한한 경외감에 휩싸였던 그 작품 역시 코멕 맥카시의작품이다. 그는 군더더기와 감정을 덜어낸 건조하고 견결한 문체로 폐허가 된 현대 미국 사회를 그려낸다. 이 점은 폐부를 찌를 정도로 우리의 가슴을 옥죄고 또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적나라하게 물질화‧표면화시키기 때문에 더욱 오장육부가 얼어붙게 만든다. 지난 가을 에 이어 산 원서를 읽다가 그 질릴 듯한 건조함과 ‘무자비함’, ‘불친절함’에 질려 읽기를 포기하고 덮어두었던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는진중문고에 꽂힌 번역본을 꺼내 읽게 되었다. 정영목의 탁월한 번역에 의해 다시 태어난 이 소설은원작의 그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돌아오는 느낌이다. 물론, 번역이기에완벽히 옮겨졌다고 할 순 없다. 하지만 이것은 최상의 번역이라고 믿는다.
이 소설은 잊기 어려울 정도로 기이하고 독특하며, 절망의 상태를 신랄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가히 독보적이라 할 만하다. 한 소년과 아버지가 지독한 어둠과 죽음에 대한 공포,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겪는 세상의 멸망 이후의 땅의 그 광폭하며 고독한 경멸감은 소설의 문체 안에 고스란히남겨져 있다.
이 소설에는 어둠만이 가득하다. 까만 어둠, 오직까만 어둠 말이다. 요컨대 예술작품 또는 서사란 형형색색의 아름다움과 돌변하는 광채의 변이도가 만드는서사성과 감동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어온 사람들에게 이 소설은 어쩌면 이것이 과연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기승전결의 딱 떨어지는 서사 안에 좌절 속에서 비상하는 영웅의 이야기에 익숙한 우리 독자들에게는 소설을 읽어나가면서점점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저히 고양하는 희망의 빛이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잠시 식량과 빛을 찾은 것 같으면 이내 더 큰 절망이 찾아오고, 더큰 어둠과 파괴가 다가온다.
말하자면, 소설의 주인공인 부자 일행이 요행으로 죽음을 면하게 되면 독자는 가슴을 쓸어내리듯안도감이 들지도 모른다. 아주 잠시 말이다.그러나 작가는다시 이 세상에 과연 그 절묘하게 우연적으로 등장하는 희망의 존재라는 것이 가당키나 한 것이냐고 따지듯이 되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문을 더욱더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인간(특히, 아버지-남성들)에게 심어진 현대사회의 암울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극단의 지점까지 몰아넣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의심하고 회의하게 만든다. 괴물처럼 변해가는 인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문명. 그러나 그 고행의 끝에 아주어렴풋한 성냥 불빛같은 휴머니즘과 ‘신비주의’가 있다. 그렇다. 신비 내지는 판타지. 그것이아니면 그 어떤 빛도 말할 수 없는 리얼리즘 그 자체로서의 절망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늘날을 살아가는인간들에게 최후의 희망은 바로 그 ‘신비’일지도 모른다.신비로부터의 희미한 휴머니즘. 그것은 이 소설에서 “신”적 존재이다. 이제는그 누구도 믿지 않지만, 이 땅의 마지막 인간인 아버지에게 아주 희미한 불빛처럼 사그라들고 또 살아나는휴머니스트의 역사를 다시금 부여하는 것이다. ‘암흑의 비주얼’ 안에서꺼져가는, 그러나 희미하게‘아직’ 빛나고 있는 작은 손전등의 역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