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의 자기반성

어제 엄마와 오랜만에 전화 통화를 하다가, 최근 일이 자꾸 꼬여서 거의 1년째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종종 듣던 이야기라서 '들어주는 사람'의 자세로 위로해주었다. 엄마는 내게, 자신이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최근 자신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업자'가 남성으로서 여성인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렇게 어깃장을 부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듣기에도 그건 너무 합리적인 생각이었다. 그 업자는 종종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큰 틀에서는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꼬장을 부려왔다. 엄마는 이 문제를 회피하기만 하는 '아빠'도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그 '업자'도 다른 차원에서 비슷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장기간 수집해온 빅데이터에 따르면, 남자들이 풍파 속에서 열심히 살면서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다보면, 나이 먹고 귀에 오물이 너무 많이 차서, 남(혹은 '쟤네')의 말은 잘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조급해진다. 자기 생전에 세상에 일가를 이루겠다는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세상은 여전히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 마음은 더 쪼들리는 것이다. 중노년 남성의 고집이란 이렇게 해서 형성된다.

내가 아는 한 60대 남성은 젊은 나이에 큰 일을 좀 해보고 싶어서,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전문직이 되었다. 그러나 인생이란 게 쉽지 않아서, 빚만 늘고 영업은 되지 않아 생계를 위한 일에 몰두했다. 근 30년만에 빚을 모두 갚은 그는 고집불통의 바보가 되어버렸다. 그가 하는 모든 이야기는 자신이 30대 중반까지 읽은 것들에서 비롯된다. 그는 항상 "우리 때는"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주 지루하고 깝깝한 꼰대의 전형이 된 것이다.

민주당 언저리(국민의힘도 다른 의미에서 마찬가지…)에서 잘난 척하고 다니는 중노년 남성들은 일관되게 자신이 세상을 바둑판 내려다보듯이 조망할 수 있고, 자신에게는 엄청난 포석과 묘수가 있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40~50대에는 온갖 오기를 부리며 자기 주장을 밀어붙임으로써 사태를 악무한으로 끌고 간다. 10년 전의 86세대 정치인들을 떠올려보자. 지금와서 보면 오류와 오판, 오만으로 뒤범벅이었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하나같이 자기 잘난 맛에 떠들고 다녔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에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령 정의당이 민주당을 도울 때라며, 라디오 생방송에서 쌍심지를 켜고 호통치는 박지원이나,

노동운동이라고 다를까? 오는 임시대대에서 정치방침과 총선방침을 밀어붙이겠다는 민주노총 일부 인사들의 태도에서 몽매한 중년남성의 고집이 느껴진다. 응당 운동가는 실패 속에서 왜 실패했는지 돌아보고, 그 실패들을 반복하지 않으면서, 내부를 고치는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 한데 이번 민주노총 총선방침을 밀어붙이는 분들은 10년 동안 조합원 교육은 더 후퇴했고, 민주노총이 추구하는 정치의 실내용이 무엇인지는 더 희미해졌는데, 내부의 자기 혁신 시도는 전무한 채, 말도 안되는 총선방침을 밀어붙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밀어붙이면 표면적으로도 당연히 실패하지만, 내부는 더 치명상을 입는다. 조합원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뭔 소리하는지 모르겠는데 간부들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운하면서 뭘 밀어붙이면 그것이 자기 계급의 정치세력화로 인식될까? 오히려 반대로 인식될 가능성이 더 높다. 이건 허무주의도 아니고, 비관주의도 아니다. 오히려 냉정한 현실주의이고, 현실의 진정한 혁신과 급진은 냉정한 현실인식을 거쳐야만 만들 수 있다. 민주노총의 총선방침은 아무 내용도 없고, 동어반복으로 가득한 비문 덩어리이다. 그런 글을 버젓이 써서 배포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참 부끄러움을 모른다는 생각만 든다.

불행히도 한국 중노년 남성들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생애주기의 속도와 지배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대체로 냉정한 현실인식을 할 능력을 갖추기 전에 나이가 들어버린다. (그건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에도 능히 짐작 가능한 미래이다. 대부분의 20~30대 남성들은 자신에 대해 대체로 과대평가한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이런 중노년 남성들의 목소리가 큰 사회이다. 그들의 열정이 오히려 그들이 원하는 바로부터 세상을 멀어지게 한다. 마치 똑같이 쳇바퀴를 굴려봤자 벼랑 아래로 떨어질 뿐인 다람쥐가 사태의 엄중함도 모른 채, 자신감만 충만한 채, 쳇바퀴를 계속 굴리듯이 말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중노년 남성들도 많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렇게 늙기란 쉽지 않고, 그 지극히 평범한 상태가 치열한 자기고민의 산물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정치 불능 상태란, 자기 정정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정치 불능과 자기 생애에 뭔가 일가를 이루겠다는 영웅주의적이고 무협지적인 욕망이 뒤범벅되었을 때 훨씬 심화되는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승리는 패배를 뼈저리게 인정하고,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용기를 갖춘 사람들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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