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에서의 마주침들

1.
제기동에서의 기묘한 만남을 생각해본다. 그 자리는 참으로 독특한 회합의 자리였다. 우선 나는 그곳에서 무려 5,6명의 새로운 얼굴들과 마주쳤다. 인트라넷 책마을에서 만나 올 한해동안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듣고, 또 나눈 이들. 다들 나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깊이있는 고민과 학문적인 성취들 때문에 많은 도움을 얻은 이들이였다. 사이버 공간에서 오랫동안 대화를 나누어서인지 다들 내가 생각했던 그 모습이었고, 또 새롭게 만날 수 있었는 네 명의 '동지'들도 참 좋은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군대 밖에서 새로운 인연을 맺는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유쾌하고 흥미로운 밤이었다.
또 그 자리에는 3,4년만에 만나는 옛 동지들도 있었다. 그 중 넷은 여전히 '학생운동'의 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었고, 또 두 명 정도는 나처럼 한 발자국씩 비켜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는 뉴스를 전한 아청의 얘기에 꽤나 놀랐고, 또 대단히 우연하게 마주친 세연과 진호, 그외 다함께의 준효 동지 등도 무척 반가운 이들이었다. 형제집에서 가인으로 이동하면서 꽤나 다양한 풍경들과 마주칠 수 있었는데, 여전히-아직 남아있는 고대 학생운동 그룹들의 표정들, 그리고 술 취한 학우들 사이에서 벅차게 부대끼는 대중 활동가들의 모습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몇몇 활동가들은 거의 최고학번 활동가가 되어 남다른 '졸업'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고, 또 처음 마주친 어떤 이들은 활기차게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여전히 변함없는 연말 제기시장의 풍경이 아닐까 싶다. 그날 밤 술자리에서 느낀 몇가지 상념들을 다소 두서없이 정리해본다.
2.
형제집에서 나올 즈음 막판에 '고대 FM'을 요구하는 학우들의 요구에 못이겨 어쩔 수 없이 FM을 하는 모 과반 학생회장의 모습은 수년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 자리에 우리와 함께 있던 非고대생들은 이 익순치 않은 학벌주의,마초이즘 문화의 풍경에 자못 놀라고 당황해했고, 비난을 쏟기도 했다. 또 어떤 '고대생'들도 힐난을 가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식의 문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또 학생사회의 고유한 문화를 만들어가는 데에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 지 알고 있다. 다른 문제를 다 떠나고서라도 그것은 일차적으로 '예의'의 문제를 빗겨갈 수 없다. 그 자리가 제기동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지하철이나 신촌 한복판일때, 고대생, 연대생들의 그런 문화는 자못 폭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아직까지 이런 술자리 문화에는 브레이크가 없고 자성의 목소리도 훨씬 적다. 일상과 문화에서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항상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학생운동 활동가들은, 아마도 이런 상황들을 직면할때 적잖이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었고, 그때마다 나는 괴로운 심정으로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활기차게 FM을 외쳐야 했다. 그것은 항상 나 자신의 자아를 손상케 하는 것이었지만, 별 도리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대중 활동가가 계몽하듯이 학우들에게 "당신들의 그런 문화는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선택이고,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언제나-항상 고대 학생운동 활동가들이 직면해야하는 이런 상황에서의 '고뇌'에 대해서, 나는 쓰라리게 위로를 보내고 싶다.
3.
예전에 나는 술자리에서 대단히 공격적으로 논쟁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 버릇이 몇년만에 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애정을 갖고 찾아와준 다함께 회원인 04학번 모 후배에게 나는 대단히 공격적으로 그의 모순된 정치성과 행동양식을 비판했다. 그가 대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때까지 몰아붙이는 수준이었는데, 대단히 불필요하게 공격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왜 그랬을까, 를 생각해보면 아마도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는 상실된 '주체성'에 대한 억울함, 또는 항변의 감정이 되살아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그게 아니면, 전해들은 몇가지 학내 선거 결과들이 못마땅하게 느껴져서 공격성을 갖게 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후배의 모순, 자신의 정치적 우회를 개별적 인간관계에 대한 실망 자체로 핑계를 돌리는 태도 자체는 여전히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운동의 폐절 상태의 모든 탓을 타인에게 돌리는 방식은 너무나 비겁하다. 그는 왜 여전히, 자기 자신은 돌아보지 못하는가. 그것은 fact의 문제이기도 했고, 사실의 문제이기도 했다.
4.
그 자리의 몇몇이 운동권-농담을 쏟는 것이 매우 불편했다. 특히 경희대, 연대에서 왔다는 몇몇 사람들이 쏟는 말들이 너무 싫었다. 일단은 모 그룹에서 내세운 선본의 '총학생회 선거 승리' 결과를 "걔네가 총학생회 다시 먹었다"고 표현하는것. 그것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님을 그는 모르는 듯 하다. 그가 아무리 바디우와 라캉 같은 훌륭한 텍스트를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해도, 삶에서 '운동'을 대할때의 바로 그런 방식의 태도 자체가 문제들을 야기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 아마도 그는 앞으로도 수차례 자신이 만드는 위기들 앞에서 쓴잔을 마시게 될지도 모른다. 학생회 선거는 해당 선본에게는 '당선'이 가장 훌륭한 결과가 될순 있지만, 당사자 스스로 결과가 가져오는 위악적 상황들에 대해 긴장감을 갖지 않는다면 지배계급 정치엘리트들과 같은 양상에 빠지기 쉽다. 이를 그가 좋아하는 철학적 레토릭으로 표현하자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주체-활동가군이 '학생회 선거'를 대상화시키는 태도가 스스로를 외부성으로 위치시키는 위험/간극으로부터 경계심을 늦추지 말하야한다고 말해야 하나? 아무튼 그들이 무대응과 무참여, 또는 소수자 마인드로서만 운동에 임하는 외부자에 서기를 즐기는 사람이라도 하더라도, '학생회 선거'의 물질성은 언제나 큰 독약을 물고있임을 명심해야 한다. 덧붙여, 진보신당 당원인것으로 보이는 경희대 동지들이 쏟아내는 운동권 농담은 대단히 불편했다. 나는 그런 방식의 농담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것이 얼마나 활동가군을 대중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드는지, 또 발화하는 주체를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특별한 지위로 이동시키게 하는 위악적인 언어행위인지 알지 못하는 듯 하다. 나는, 대중운동의 장에서보다는 다소 아나키즘적인 개입들로서만 다소 제한적으로 운동을 경험해온 그들이, 다름 아닌 2000년대 초반까지나 겨우 명맥을 잇던 그 주류-운동권의 사투리,농담들을 무책임하게 쏟는 것을, 그날 그 술자리에서 들으며, 약간의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아직 위기는 이렇게 만연해있는 것이다. 가장 건강해야할 그들에게도 위기가, '미리' 도래해있는 것이다. 왜 '운동'이 이데올로기와 관계맺음에 대한 무한-책임이 아니라, 취향과 스타일로서만 답습되어있는걸까? 그것은 ㅈㅍ에게 어울리지 않다.
5.
내가 기획한 마주침이 이렇게 갈등적인 것으로 마감될 것인지, 예상하지 못했다.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던 걸까? 고독하게 자신의 많은 것들을 희생하며 7년 여간 활동해온 동기의 신경증은 상당했다. 그 사이에서 사후적으로만 상당히 쿨한 척, 갈등을 정리하고 오해를 풀려고 한 나의 노력은 위선적인 면이 있었다. 그리고 괴롭게 자신의 위치의 불안정함을 확인한 두 동지 --- 게슴츠레, 김예찬---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알고 계시겠지만, 변혁에 대한 열망을 진정성 있는 것으로 밀어붙이려면, 영원히 지면 등을 통해서 논평하는 자로 남아있을 순 없다. 그 점에서 나는 확실히 '공동생활전선'으로 제기된 기획들에 감탄했는데, 내가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하는 사람들'로만 생각했던 동지들이 '행동'과 '실천'의 장으로 나서고자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천 이후에 얼마나 많은 간극이 존재할까. 그것은 '필연적으로' 괴롭고 지난한 과정이 되리라. 그러나 그 사소한 실패들 앞에서 좌절하지 않으리라 믿으며, 언제나-항상 고려대의 전체 학생사회 자체를 보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 지금은 눈에 훤히 보여도 막상 무언가를 시작해 바뻐지고 정신없어지면 당장의 뒤틀림들말고는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되기 쉽상이다.
그것을 제기하는 방식도 책임감있는 것으로 비추어져야만 하지 않을까 싶다. 이미 많은 공부들을 통해 많은 걸 '머리로' 알고있는 두 동지는, (그러니까 내가 수년간 무수한 시행착오와 상처들로 획득한 것에 비해) 그 간극의 요체들이 바로 어느 지점에서 작동되고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괴롭게 거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오로지 '대중운동의 장'에 머무르기만을 강박증적으로 재점검하며 레토릭으로만 가득찬 논쟁 자리보다는 학우들을 만나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학생행진' 활동가들은, 학생사회 재구성론에 있어서 '게슴츠레'님의 고대문화 기고문과 항상 다르지 않게 생각했고 또 02년 이래로 항상-이미 그런 총론을 제출해온 바 있다. (나는 사실 그 글을 처음에 읽고, 그가 '학생행진' 회원인줄 알았다.) 아무튼 그날의 불화가 꼭 영원하리란 법도 없고, 결국 마주치고 함께 가야만하는 동지들은 어떻게 다시 마주칠 수 있어야 하는지, '해후'해야하는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공동생활전선을 제기하는 것 역시, 대중운동의 장 안에 뛰어든 이후이어야 한다. 요컨대 '생활도서관'을 중심으로 활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단순한 '우리들만의 모임'이 되어선 안되고, 굳이 예를 들자면, 고대 학생사회 안에서 '자치단위운동 재건' 또는 '학생사회 학회학술운동의 재건'이라는 식으로 어떤 거시적 맥락 안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동지들의 '그 거점'이 존중받고 인정받을 수 있으며, 동지들의 주장도 귀기울여질 수 있다. 게슴츠레님과 예찬님이 느껴야 했던 '고아'의 감정은, 운동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 자아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대단한 행운아로서 결국 다시 변혁적 전망을 공유하게 된 두 동지는, 다소 어렵겠지만 이제는 진정으로 학생운동의 장으로 뛰어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곳은 때로는 진흙탕 같은 곳이고, 괴롭고도 고단한 과정이 반복되는 곳이다. 아마도 수도 없이 위기에 처한 자신의 상황을 감지하게 될 것이며, 비참한 기분도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곳으로 뛰어들길 바란다. 그게 무엇보다 절실하며, 그런 고민을 하는 외부자의 감정을 느끼는 여러 동지들과, 이미 내부에서 활동하며 정신적으로 여러 상처를 겪고있는 여러 활동가들 모두에게 많은 에너지를 안겨주리라 믿는다.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다.
커버 이미지 : Ben Sh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