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이주, 언어라는 토픽을 관통하는 총체적 영화, 『미지의 코드』

<미지의 코드>
Code Inconnu: Recit Incomplet De Divers Voyages
프랑스, 루마니아, 독일. 2000
감독 미카엘 하네케
출연 줄리엣 비노쉬, 띠에리 누빅, 조세프 바이어비클러, 루미니타 게오주
미카엘 하네케의 2000년작. 구할 수가 없어서 못보고 있다가 EBS 세계의 명화에서 오늘(3월29일) 11시반에 한다는 기사를 보고 기다렸다가 보게 되었다.
항상 인간이 숨기고 싶어하는 면모들을 사회, 정치, 역사, 문화 등에 걸쳐 총체적으로 '전시'하는 그의 영화들처럼 이 영화는 그 총체성 연출의 절정이라고 할만한 작품인 것 같다. 작품의 궤를 따지자면 <퍼니게임>(1997)의 뒤를 잇고, <늑대의 시간>(2003)과 <히든>(2005)에서 충격적 메시지를 보다 더 만개시킨다.
"이주"라는 사회적 문제를 영화의 큰 화두이자 소재로 삼고, 그런 맥락하에서 파리, 루마니아, 카불, 코소보를 관통하는 지정학적으로 '세계'라는 토픽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자칫 인물과 인물간의 관계나 이야기의 구조, 이야기의 선후관계를 따지느라 영화의 큰 맥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계의 그물망을 뚝뚝 끊어놓으며 전시하다가도 종국에는 느슨하게 연결되어있는 무엇을 다시 보여주므로, 머리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파리의 어느 농아학교에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한 아이가 앞에 나가서 다른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 소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아맞추는 게임을 하고 있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지 맞추지 못한다. 그리고 cut. 파리 시내의 어느 거리로 이어지면서 단절된 관계들이 하나하나 보여진다.
그리 유명하지는 않은 영화배우 안느(줄리엣 비노쉬), 그녀의 남자친구이자 코소보나 카불 같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에 가서 분쟁지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는 전쟁기자, 루마니아에서 온 불법체류자 마리아, 아프리카의 어느 곳에서 온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가족과 아비두, 전쟁사진기자의 동생이자 가출해버린 장, 그리고 홀로사는 장과 전쟁사진기자의 아버지, 가정폭력을 견디다못해 사라진 여자 아이, 지하철에서 아랍 청년들, 지하철에서 안느를 돕는 어느 아랍인 중년 남성까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지만 그들 사이의 소통은 거의 단절되어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마치 알아볼 수 없는 복잡한 제스쳐를 하고 서로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는 농아들처럼.
그리고 그/녀들의 소통의 단절에는 '이주'라는 문제와 언어, 그리고 전쟁이라는 정치사회적 문제가 관통해있다. 파리는 과연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도시인가? 라는 질문과 더불어, 인간사회의 단절들은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 종반부의 아프리카적 리듬-어느 악단의 북소리-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복잡하게 청각적으로 개입해온다. 파리 도시 안의 풍경 위에 아프리카의 청각이 개입하면서 일종의 소격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소통, 그리고 인간, 미지의 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