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스나이더의 『300』

이제야 「300」을 봤다. 예전에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보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르네 끌라망이나 자크 리베트의 영화를 보다가도 갑자기 할리우드의 대작 영화를 보고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꽤 독특하고 영화라기 보다는 만화책처럼 느껴지는 재미있는 영화다. 우선 이 영화는 미국의 저명한 만화작가 프랭크 밀러 원작의 <300>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그리스의 대지나 해안지대가 아니라,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스튜디오에서 이 영화의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 실사로서의 인물과 3D 배경, 컴퓨터 그래픽의 완벽한 결합! 이전까지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형식 미학을 선보이는 영화다.
이 스펙타클한 영화에 대해 대중들은 대체로 열광했다. 그러나 기대 이하라는 이야기도 꽤 많았는데, 이 영화가 헐리우드의 전통적인 이야기 작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페르시아제국의 침략에 맞선 스파르타의 정예병 300명이 주인공이지만 결코 그들을 절대선으로 간주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들은 참 잔인하고 자비없이 적들을 하나하나 죽여나간다. 국가주의적 사고틀을 가진 자라면 그것이 가능할테지만 왠만한 관객들에게 절대 그런 몰입을 허용하진 않는 영화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 영화가 전하는 메세지는 단 하나, 애국심도, 약육강식도 아니요, 오직 안티고네식 투쟁을 선동한다. 극악무도한 수십만의 적 앞에서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서라면 당연히 굴복하고 항복해야하지만 무언가를 위해 저항하자. 라는 선동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나 어쨌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때때로 몇몇은 이 영화에서 나오는 상징에 대해 스파르타를 미국으로 대치해 보기도 했다. 페르시아는 아프간, 탈레반으로 보고.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런 여지가 없어보인다. 그러나 이견이 존재하기에 논쟁들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슬라보예 지젝이 쓴 이 영화에 대한 평론은 텍스트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그 평론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만 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 몇개월전에 몇몇 블로거들 사이에서 이 영화, 그리고 지젝의 비평글, 지젝 철학에 대해 토론이 이루어졌었다. 재미있고 배울 점이 많은 토론으로 보인다.
난 지지까지는 아니지만 지젝의 비평이 꽤 의미있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대다수 사람들은 그의 글을 읽지 않는다. 더군다나 모든 평론이 그러하듯 관객들이 그 비평을 읽을 필요도 없다. 사람들이 영화를 받아들이는 행위라는 것은 비평과는 조금 무관한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다만, 영화 외부에서 지금 '저항'이라는 것에 대해 유의미한 논쟁을 벌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기에 의미있는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적 권위와 자의식으로 가득찬 강단 좌파들은 거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더군다나 지금과 같이 지적 권력차가 계급갈등과 거의 상등이 가능한 정세에서는 더욱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