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르누아르 특별전

장 르누아르 특별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3월1일부터 13일까지 장 르누아르 특별전을 하고 있다. 일주일간의 영화 촬영이 어제 끝나고 벼르고 벼르다가 오늘, 혼자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 갔다. 오늘, 고민 끝에 있는 돈 다 털어서 연회비 6만원의 서울아트시네마 관객회원에 가입했고, 씨네마떼끄라는 이 공간에 스스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로 결심했다. 얼마 후면 군대에 간다. 군 생활 중간중간 휴가나 외박을 나올때 이 공간이 내게 안식처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나 Nana

장 르누아르 감독 1926년작

위대한 작가 장 르누아르의 데뷔작. 에밀 졸라의 소설<나나>(1880)를 원작으로 삼아 영화화한 작품이다. 두 시간에 걸쳐 한 여인 '나나'를 중심으로 그녀의 캐릭터 중심으로 서사가 펼쳐진다. 나나는 허영심도 많고 허위의식도 강한 여인이다. 그녀는 희극 무대의 유명한 여배우였지만, 타고난 명예욕, 물욕 때문에 사교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녀의 사교계 입문은 좀 창부같은 뉘앙스다. 여러 귀족-남성들이 그녀의 매력에 빠져 그녀에게 많은 호화스러운 선물을 갖다바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값비싼 보물과 조금은 변태적인, 독특한 성적 유희로서의 남성들로만 눈에 보일뿐이다. 말그대로 '욕망'만 남는 삶이다. 이처럼 순수하게 본질적인 삶이 있을까? 영화가 거의 끝나갈때까지도 그녀에겐 어떤 번뇌도, 갈등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진다.

그러다가 그녀가 자신의 욕망에 스스로 지쳐갈때는, 주위에 있던, 그녀를 짝사랑하던 귀족들이 하나둘 스스로 목숨을 끊기 시작할 때이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도 매말라버린다.

장 르누아르의 아버지인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한 그림이 떠오른다. 이 그림의 제목도 <나나>이다. 장 르누아르가 자신의 아버지의 그림 속 여인 나나에게서 느낀건 무엇이었을까?

황금마차 La Carrosse d’or

출연 안냐 마냐니, 오도아르도 스파다로
1952년, color, 35mm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던 장 르누아르 특별전에서 본 다섯개의 영화들 중 하나. 르누아르가 미국에서 다시 돌아와 찍은 첫번째 영화로, 이탈리아의 유명한 배우 안냐 마냐니가 주인공이다. 안냐 마냐니는 <무방비도시>(1946)에서도 나왔던 거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독특한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다. 하나의 플롯 안에 한 공연 무대가 위치하고, 그 공연 무대에 대한 은유처럼 영화가 흘러간다. 그러다가 영화가 다 끝났을 때에 우리는, 우리가 본 영화 자체가 하나의 '공연'이었음을 알게된다.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바로 공연 무대에서 상연된 그 모습으로 치환되어 카메라가 뒤로 빠지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는 지극히 희곡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배우들은 아마도 의도된 '연극적 연기'를 보여주고있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지다가도 이에 대해서 익숙해질만큼 빠져들었을 즈음에는 영화가 끝나버리면서 우리가 본 하나의 독특한 '리얼리즘'형식으로서의 멜로드라마 서사가 결국 어떤 무대위의 공연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술과 권력, 사랑에 대한 토픽들이 어우러져 서사를 구성하고 있고, 결국 예술과 사랑이란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속박되지 않을때에만 진정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교훈적 결말'로 영화는 끝난다.

탈출한 하사 The Elusive Corporal

감독 장 르누아르 Jean Renoir
1962년, 16mm, 101min.

나치 군대의 포로수용소에 갇힌 프랑스군 포로들에 대한 영화다. 이들은 수용소라는 특별한 공간 안에서 '안주'하거나, '탈주'한다. 그러나 그들의 탈주가 수용소와 아주 다른 무엇을 의미하진 않는다. 직접적인 억압의 공간(=수용소)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억압의 공간(=파리)으로의 탈주일 뿐이다. 어쩌면 단순한 시대극에 불과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르누아르는 캐릭터, 인간에 대한 영화로 만들어냈다. 주인공인 '하사'는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또 시도한다. 이 과정을 르누아르는 코믹하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고 있다. '비극'을 희극적으로 풀어내는 이런 스타일은 나치즘의 억압에 대한 '아빠'의 저항을 유머러스하고 감동적으로 그려낸 이탈리아의 코미디 영화 작가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와 닮아있다. 아마 이 영화 <탈주한 하사>가 <인생은 아름다워>의 원용이 되지 않았나, 싶다.

또 한편 이 영화는 장 르누아르 자신의 1937년작 <거대한 환상>과도 닮아있는데, 전쟁 포로의 탈출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거대한 환상>이 1차 세계대전에서의 '인민'들의 삶과 휴머니즘적 각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2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예고한 놀라운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라는 과정에서 전쟁과 억압,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간의 자유본능, 그리고 결코 그런 것들을 해결해줄 수 없는 이 억압-세계에 대해 캐릭터 중심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엄연히 캐릭터 중심의 영화이다. 하사 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은 모두 변하고 능동적 캐릭터로서 존재한다. 탈출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녔던 사람도 패배주의에 빠지거나, 안주하거나, 속박을 대가로 한 사소한 물질욕망에 스스로의 자유본능을 포기하게 되기도 한다. 한편 스스로 비겁한 행동을 통해 무언가를 배반했던 자도 용감하게 몸을 던져 탈출하다가 총에 맞아 사살되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 모든 것들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결국 탈출에 성공한 하사와 그의 친구, 프랑스 국경에 거의 다 도달했을 때 한 가난한 농업노동자와 그의 부인을 만난다. 그들이 묻는다. "당신은 프랑스 인이고, 프랑스 국경이 바로 저편인데 왜 우리의 땅을 되찾기 위해 저곳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느냐"고. 농민은 말한다. "나치가 있기 전에도 나에겐 땅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내게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는 것만 빼고." 그의 옆엔 독일인으로 보이는 한 풍만한 풍체의 여성이 서있었다.

하사와 하사의 친구, 파리의 쎄느강 다리 위에서 멈춰선다. 아름다운 파리의 전경, 그리고 쎄느강. 이 거대한 땅, 그리고 비가시적인 억압을 재현하는 공간 위에 둘은 다시 선 것이다. 그리고 둘은 재회를 약속하며 헤어진다. 파리의 거리 속으로 하사가 묵묵히 걸어간다. FIN.

Subscribe to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운다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