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시험장
워드프로세서 1급 자격증 실기시험장에 갔다. 모두들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나도 마찬가지. 무엇을 위해서였을까? 나는 자격증 포상휴가를 위해서였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는 '자격증'이라는 이벤트를 이용해 20대의 정서불안을 자극한다. 가만히 있어도, 쉴새없이 토익책을 넘겨도 뒤쳐지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자격증을 따는 행위는 일시적인 안위를 안겨준다. 단지 플라스틱 조각 하나일뿐인데. 그것은 마치, 한 개인의 능력을 증명해주는 증서처럼 행세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 어떤 능력을 증명해준단 말인가. 워드프로세서 자격증 시험장은 마치 거대한 공장처럼 느껴지기까지했다. 공장 안에 불출되기를 기다리는 인간-기계들의 인증마크를 부착해주는 공장.
보다 더 가시적인 것처럼 다가오는 '자격증'이라는 목표치가 어떤 작은 지표들을 형성해준다. 사람들은 쉴새없이 지표들을 하나하나 찍으며 어디론가 달려간다. 그러나 달려간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다. 패배와 시련, 권태와 동물화라는 총체적 사태를 맞이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