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과 출력
넘쳐흐르는가?
지난 80일간 30권에 가까운 책을 읽었다. 이 갑작스런 입력은 도무지 나의 무미건조하고 딱딱하기 짝이 없는 일상과는 너무도 상반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나는 틈이 날때마다 책을 읽긴 했지만 오전부터 낮시간 대부분은 재미없는 문서들을 작성하고 또 고치는 일들로 가득채워져 있었고, 아무래도 나의 미래 인생, 민중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이 분명한(!) 것들에 대해 진지하고 격렬하게 토론하는 장교들의 고함소리를 듣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 머리속에는 무엇이 채워지고 있었는가? 플로뵈르의 현란한 표현구들, 발자크의 통렬한 묘사들, 사르트르의 허를 찌르는 분석들, 모파상의 기괴한 이야기들, 그리고 보들레르의 권태롭고 음울하기 짝이 없는 시어들이 채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입력의 과다로 지쳐가고 있다. 파시스트들의 업무와 끊임없이 격렬한 감정을 토해내는 근대사상가들, 안티파시스트들의 감성의 수액들이 목구녕 끝까지 차오른 것이다. 급기야 나는 몇번이고 구역질을 할뻔한 상황에 다다르고 말았다.
내 가슴은 출력을 갈망하고 있다. 영화로, 일기로, 글로...! 그러나 대체 어디에? 그나마 이 느리고 지지부진하기 짝이 없는 인터넷 속의 허름한 블로그 창이 아주 사소한 안식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