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번째쯤 되는 뉴스
견딜 수 없이 권태로운 나날들이다. 계속 한가하다.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리려고 노력하지만, 점점 어렴풋해져간다. 어떤 휴가는 무산되었고, 어떤 휴가는 아직 공문이 안떨어지고 있다. 하루종일 YTN 뉴스가 흘러나오는 TV 모니터를 문뜩보다가, 꺼져있던 볼륨을 15정도까지 키웠다. YTN노동조합에 대한 소식이었다. 뉴스전문채널 YTN 소속 노동자들은 YTN 사장 구본홍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된 이들의 투쟁 덕분에 구본홍은 출근을 포기해야만 했다.
YTN 노동자들의 용기있는 투쟁에 연대하는 다른 언론사 노동자들의 연대 집회들이 있었다. 한겨레신문, MBC, KBS, 프레시안, 경향신문,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여러 언론사의 기자를 포함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서 MB정권의 언론장악음모에 항의하는 메시지를 표시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아는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려대 경영대에 다니던 시절 만났던 A반 선배 99학번 오성이형이었다. 오성이형은 학영이나 나, 세희, 승환이 등 우리 03학번들이 꿋꿋히 학회를 세우고 열심히 사회과학 세미나를 꾸려가려고 하고 있을때 작은 도움들을 주었고, 또 용기를 주었던 선배였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만 같던 선배였다.
언젠가, 내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간 이후였으니까 아마 작년이었을 것이다. 나는 평창동에서 안암동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오성이형을 만났다. 내가 수개월만에 고려대로 가던 중에 만난 것이었다. 정말 기분 좋은 우연이었다. 너무 반가웠다. 오성이형은 "나 취직했어!"라는 말로 안부를 전해왔다. 한겨레신문 축구전문기자라는 것이다. 오성이형은 축구를 좋아했었기 때문에 정말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기쁜 마음으로, 맘 속 깊이 축하했다. 가끔 집으로 배달되는 신문 스포츠면에서 오성이형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 보이지 않는 안부가 작은 웃음을 주었다.
그리고 지금 오성이형은 조선일보보다는 월급이 보잘 것 없는 언론사의 스포츠면기자로써 YTN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 연대하고 있었다. 갑자기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아마도 그때, 내가 그 누구보다 날카롭고 영원히 빛날 칼을 갈며 그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위해 살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항상 자신감에 넘쳐있었고, 작은 실수나 불완전한 오늘과 미래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20대 초반에 벼리던 그 검의 칼날이 이제는 보잘것없이 무뎌져있었고, 나는 무료함과 권태 따위의 한심한 것들에 버거워하면서 무디고 낯간지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의 그 뜨거웠던 열정과 발걸음은 어디로 간 걸까? 그때 당당하게 알튀세와 마르크스 따위를 읊며 떠들었던 말들은 어디로 간 걸까?
그 시절 내가 스쳐지나갔던 수많은 얼굴들, 수많은 목소리들이 갑자기 내 머리 속을 훅, 하고 스치며 오한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삶은 이토록 인간을 쉽게 게으르고 한심하게 만들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세상을 너무 얕잡아보고 있었는지도 몰라. 2008년 10월 15일. 내가 보낸 오늘 이 하루도 그 누군가는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었을 것이다. 아, 얼굴들, 이럴때면 나를 책망하며 나타나곤 한다. 고 이해남, 고 이용석 열사의 얼굴이 자꾸 떠오른다. 그 해 가을의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 열사들 중에서 그 둘처럼 절절하게 울부짖으며 죽은, 눈을 감지 못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앞날이 창창한 청춘이 죽은 이들이 의도치않게 전해준 가슴의 멍에들을 그 스스로의 미래에게 짐지우는 것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아프게 기억해내야할 책임감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 하루 이 소중한 시간의 공기와 구름, 창문밖 권태를 느낄 정도로 꼿꼿하고 똑바르게 세워진 나무들 사이를 제멋대로 뛰어넘는 청설모의 날쎈 그림자가 내게 이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물질과 싸우다가, 무위의 남원에서 너무나도 천천히 움직이는 느린 구름들을 보다가, 뱅뱅 도는 헛소릴 지껄이다가,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다. 숙제를 약속한 우리는,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사랑했던 사람들이 세워준 나의 감옥에서 나올 자격이 있는걸까? 갑자기 이 물음이 떠올랐다. 왠지 다음 페이지에서는 자기혐오의 일기가 이어질 것만 같아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