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대립적 정치 담론에 사로잡힌 여론

유시민처럼 20대 시기에 운동을 얄팍하게 경험하고 영광은 훨씬 크게 누린 자들은 엘리트주의, 자의적이고 협소한 판단력으로 대중을 자주 호도한다. 이들은 대개 386세대 출신이면서 20대 시기에 매우 짧은 운동 경험을 훈장 삼아 평생을 우려먹는다. (20대 시기에 오판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 중에서도 유시민은 역사적인 오판으로 뒤범벅이었던 인물로 유명하다.) 물론 90년대 학번이거나 2000년대 학번인데 비슷하게 행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사회운동 정세가 폭발하는 시기에 그 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매우 압축적이고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세라는 것은 공세기가 있으면 수세기와 침체기도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둘 모두를 공히 경험하고, 무수히 많은 변주를 고민하고 겪지 못했을 경우, 오히려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20대 시기에 깔짝 데모 좀 했다는 것으로 운동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게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운동의 모든 것을 알려준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각자의 시야는 언제나 제한적이고, 자신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여론'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정치적 오판은 일천한 개개인의 과대망상에서 비롯되기 쉽다.
민주당을 포함한 '범민주진보' 어쩌구의 망에 자신이 속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불행은, 그들에게 정세적 지침을 내려주는 이들이 일천한 운동 경험으로 허세를 떠는 엘리트주의자들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 오직 '수구보수'와 '엘리트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자유주의자인 자신들' 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양자의 이원대립을 통해서만 정세를 판단하고 행동을 기획한다. 그들의 시야에 피해자의 생각이나, 죽은 자들의 목소리, 노동조합과 도시빈민 따위가 전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우리는, 대체 당신들은 뭐가 잘났길래 그 따위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멍청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멍청하고 해로운 자들은 자신의 무지와 좁은 시야를 모르고, 오직 자신과 가장 거대한 적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몽매한 선동가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구조적 모순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실패나 잘못에 대해서는 매우 너그럽고, 이에 반해 자신보다 더 급진적이거나 합리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나도 20대 땐 그랬지"라고 무시해버린다.
이런 자들이 공중의 정치적 판단에 영향력을 미치는 주체적 조건은 매우 빈궁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을 바꾸는 길은 단지 이들에게 저주를 퍼붇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보다 더 많이 조직하고, 더 많이 비판하고, 사회운동의 길을 잃지 않는 것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