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마 나기사의 <전장의 크리스마스>

역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이번달 28일까지 열리고 있는 오시마 나기사 회고전 중 본 작품이다. 어제는 매표일을 끝내고 정산을 마치고 바로 들어갔는데, 앞의 30분은 보지 못하고 뒷부분의 90분만 보았다. 그래서 확실히 제대로 말하기 어렵지만, 몇가지 놀라운 지점이 있었다. 우선 출연한 배우들 면면이 놀라웠다. 일단 하라 중사 역으로 기타노 다케시가 등장하고, 또 일본군 대위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열연한다. 영화음악의 거장이기도 한 그는 이 영화의 저 유명한 를 작곡하기도 했고, 또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의 음악감독이기도 하다. (출연까지 했다!) 정말 엄청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또 데이비드 보위까지… 주연으로 등장해서 매력을 마구마구 뿜어낸다. 왜 이 영화를 그렇게 다들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일본인들에게 2차세계대전이 전쟁의 아픔, 패배감, 분노, 죄의식 같은 것으로 남았다면, 아마도 오시마 나기사에게 주된 관심사는 그 상처 혹은 죄의식을 긍정적인 것으로 소화해낼줄 아는 능력을 제안하는게 아니었을까 싶다. 역사의 상처가 영화의 주제로 돌아왔을때 오시마 나기사가 선택한 전략은 전쟁시기의 동성애와 인간성의 옹호이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현실 혹은 역사에 개입한다고 했을때의 가장 적실한 전략이 아닐까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도 전쟁에 관한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또 드라마까지 전쟁드라마들이 많다. <포화속으로>, <대한민국 1퍼센트> 따위들, 그리고 <전우>같은 6.25특집 기획드라마들. 하나같이 한국영화의 관객들을 몽매화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들 뿐이다. 가끔은 화가 나기도 하는데, 그들의 '애국심 고취'나 '전우애의 고양' 따위의 주제가 맘에 안들다기보다는 저 저열하고 빈약한 서사 때문이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생명력이 없고, 감정도 없고, 근거도 없고, 맥락도 없다. 캐릭터가 그러한데 사건이나 상황은 어디 쓸만하겠는가.
이에 반해 <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는 정말 뛰어난 전쟁 영화이고, 전쟁 중 어느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던 일화를 드라마틱하게 구성해서 상처들 앞에 내밀어놓는다. 우리는 그 상처와 증상들을 돌아보며, 영화 마지막에 기어이 전범으로 감옥에 갇힌 하라 중사가 사형되기 전의 상황에서도, "메리크리스마스"라고 환하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한국을 비롯해 수많은 아시아 국가의 민중들을 학살하고 괴롭힌 것을 저 일본인의 자기 반성과 삶에의 긍정으로 돌아보는 태도가 참 용기있어보인다. 하지만 오늘날 일본에는 이런 '시선'이 거의 배제되고 억압되는 것 같다. 거장의 존재가 희미해져가는게 아쉽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이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