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 | 바깥이 없는 국가

오시마 나기사의 <교사형> | 바깥이 없는 국가

<교사형>을 봤다. 굉장히 복잡하고 관념적인 영화이다. 보통 영화에 대해서 규정할때 "저 영화 너무 관념적이야."라고 말하면 영화를 '영화'다운 것이 아닌, 어떤 이론적인 틀에 끼워맞추어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식으로 비평하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뜻으로 쓰는 것인데, 여기서 내가 말하는 '관념'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그냥 이 영화는 '관념의 영화'이고, 그걸 끝까지 밀어붙인 영화이다. 그래서 감독 오시마 나기사 스스로 영화 자체를 '관념'을 투영시켜 직조해서 결국 그것만의 고유한 총체성으로서 완결성을 이루어서 그 관념들의 직조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이 영화는 고유의 힘을 발하는 것 같다. 이 영화가 지닌 힘은 동시대성의 힘이기도 하고, 어떤 처절한 격론의 잔상이기도 하다. 나는 처음에 R이 '교사형' 이후에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할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R을 '좀비'같은 존재,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 일종의 '언데드'로 생각했다. 이 죽었지만 죽지 않은 존재가 스스로 모든 걸 분해하고나서, 다시 자신의 '존재성'을 조립해나갈때 국가의 형체와 본질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니까 R이 죽었다가 재조립됨으로서만 우리는 국가의 형태를 본질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다는 식인 것 같다.

이후에 집행자들이 다소 코믹하고 과장된 상황을 연출해나가면서 R의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그때 갑자기 '현실'공간으로서의 비좁은 실내 공간에서 벗어나, 저 바깥의 환상적 공간으로 변이되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어려운 구성이다. 그리고나서 결국 R은 자신의 기억, 상처들과 대면하게 되는데 대게 그것은 그가 오로지 한 개인으로서 태어나 살아가면서 맞닥뜨려야만 했던 부당하고도 애상적인 상황의 연속이다. 저 바깥의 환상 공간에서 끊임없이 달려가고 또 기묘한 살인의 충동과 맞닥뜨리는것 자체가 이미 어떤 '현실'의 질서를 넘어선 차원의 것이라서, 이것에 대해 언어로서 가타부타 설명하고 해석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저 받아들일 뿐이다.

영화 마지막에 저 '누나'라는 존재와 나란히 누워서 나누는 대화는 거의 귀에 꽂히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썹 없는 얼굴은 기억에 생생하다. 왜 그녀는 눈썹이 없는지, 그리고 왜 죽은 유령처럼 드러나는지, 그리고 왜 R에게 뭐라뭐라 말하며 설득하려하는지, 이해 불가능하기만 했다. 결국 R이 종반부에 자신을 향한 사형집행에 반대하며 저 바깥으로 나가려고 할때, 그는 기어이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는 죽음을 택한다. 아마도 오시마 나기사에게, 국가의 바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바깥처럼 보이는 저 문 밖 역시 국가의 영토이고, 우리는 어딜가든 그것들의 '면' 안에 서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니 R이 택하는 것은 장렬한 죽음, 모든 체계에 대한 거부이면서도 체계 안에서의 산화 그 자체인데, 결국 우리가 다시 처음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시작해야할 지점은 바로 그 지점이 아니느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내게 인상적인 것은 오직 그것 하나였다. 탈주도 없고, 유목도 없다. 요컨대 바깥이란 없다. 우리는 이 안에서 불을 지르거나 좀비가 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분명히 R의 결론이 탈주였다면, 그건 너무도 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혹자는 그것이 대단히 혁명적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선택이라고 저 격렬한 영화들의 거장 오시마 나기사가 말하고 있다. R의 이야기는 일본에서 있었고 한동안 한국에서도 꽤나 알려져 구명운동까지 펼쳐졌던 재일 조선인 이진우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이다. 이 이진우라는 학생이 2명의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하거나 죽인 혐의를 받고 사형을 당한 사건인데, 진실에 대해 우리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진우가 진짜 살해범인지 아닌지, 그러니까 사법적 진실이 어떠하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가 어떤 범죄자를 향해 '사형집행'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다. 그 질문만이 오직 중요하며 진리효과를 가질 수 있다.

예고편 거의 끝부분을 보면 감독 자신이 '밧줄'을 목에 걸고 일장 연설을 한다. "사형 선고를 받더라도 우리는 죽기를 원치는 않는다. 또한 우리는 여러 국가들이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학살하는 국가의 전쟁들에서 죽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모든 것은 허용될 수밖에 없다. 국가는 언제나 유죄이지만, 우리에겐 언제나 무죄이다. 그렇다. 국가는 유죄이고, 우리는 절대적으로 죄가 없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말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우리, 그러니까 나를 비롯해 나와 함께 하는 이 혁명가들이." 그리고나서 나레이터가 배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모두 호명하고 그들의 좌우측면정면 사진이 나타나면서 이름이 찬찬히 거명된다. "타무라 츠토무, 사사키 마모루, 후카오 미치노리, 요시오카 야스히로, 토다 주쇼, 니시자키 히데오, 하야시 히카루, 사토 케이, 토우라 로코, 마츠오 호세이, 와타나베 후미오, 코야마 아키코, 조센진-윤준도, 이시도 토시로, 마츠다 마사오, 아다치 마사오, 나카지마 마사유키, 야마구치 타카시, 개봉박두! 극장으로! 감독 오시마 나기사." 참으로 특이한 트레일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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