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게니 자마찐의 반유토피아 소설 『우리들』

<우리들>, 예브게니 자마찐, 번역 석영중 / 열린책들
지난 연말. 예브게니 자마찐의 반유토피아 소설 <우리들>을 읽었다. 이는 군대에서의 고전문학 여행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여정의 과정이다. 18세기 프랑스 근대소설로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을 중심으로 유럽 근대소설들을 과거로부터 거슬러오면서 작가별로 읽고 있다. 러시아문학으로는 푸쉬킨의 후기 소설들과 고골, 도스토예프스키, 막심 고리끼, 그리고 마야코프스키도 보았는데, 고리끼 이후에 뭘 봐야할까 고민하다가 <우리들>이 가장 눈에 띄어서 보게되었다. 이는 나중에 소설 여행을 마치고나서 디스토피아 소설들을 모아서 계획을 세운 것과 맞닿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서였는데, 기대를 충분히 만족시켜주었다.
<우리들>은 20세기초반으로부터 1000년 이후의 지구에 미래에 대한 풍자적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이 소설은 거의 최초의 SF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3대 디스토피아 소설로 꼽히기도 한다. 작가인 예브게니 자마찐은 그의 이념적인 활동의 발자취들로 볼때에는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와 견줄만한 작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러시아의 혁명적 운동에 동참에 열혈 볼셰비키였으며, 이후에는 뻬쩨르부르그대학의 조선학과를 졸업하고 조선기사로서 활동하며, 소설도 집필하고 또한 당대 유럽의 새로운 예술 흐름을 주도한 러시아의 미래주의 예술운동에 동참하기도 한다. 그러나 볼셰비키 혁명을 겪고, 반동기를 겪은 후에 그가 맞이한 소비에트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전체주의적으로 변모해가는 소비에트의 모습과 편협해지는 볼셰비키 위정자들의 예술관은 예브게니 자마찐에게 짙은 회의를 불러왔다. 자마찐은 이에 굴하지 않고 이런 혁명의 편협한 흐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강하게 고수했고, 이는 당시 소비에트의 주류질서로부터 이단자 취급을 받게 되는 원인을 제공했다. 이 때문에 작가는 프랑스 파리로 망명해 작품을 활동을 이어가나, 생활고와 병고에 시달리다 죽음을 맞이한다.

이 소설 <우리들>은 그런 당대 러시아에 대한 실망감으로부터 시작된 소설로, '이성'이라는 그물망에 의해 촘촘하게 메워진 미래 사회의 암울한 단상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D-503은 스스로 이 이성의 그물망에 갇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단일제국"을 위해 충성을 바치는 '번호' 중 하나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 존엄으로서 지칭되기보다는 전체 중의 하나, 하나의 '번호'로서만 불릴 뿐이다. 또 "단일제국"의 "은혜로운 분"이 만들어놓은 시간표에 맞추어 모든 일상을 촘촘하게 매꾼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D-503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다. 한 여성 I-330과의 만남이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단일제국"에서 '감정'을 갖는것은 죄악이다. 계산에 의해 꼼꼼하게 짜맞추어진 인간들의 일상과 세계에 어리석은 균열과 갈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D-503은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그는 결국 모든 감정과 사랑을 배반하고, 전체 중의 하나가 되는 선택을 하게 된다. 다시 무수한 번호들 중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 소설 <우리들>은 스탈린주의와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소설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 소설은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금서였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 금서 조치가 풀려 빛을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소설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간 이 소설이 반공 친서방 소설로 읽힌 것은 반공 소년을 길러내는 국가 교육이 만들어낸 우스꽝스러운 풍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풍자와 이성과 감성의 갈등 속에서 인간이 겪는 개인적인 고통, 그리고 서구의 이성만능주의, 진화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폭력적 체계에 대한 풍자가 담긴 문학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이 소설은 이후 많은 디스토피아 문학의 고전, 참고로서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문체 속에서 미래파 작가다운 혼란과 반서사성이 짙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