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징후와 세기’

2000년대 돌아보기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2000년대 100대 영화 보기 프로젝트>의 첫번째 영화는 <징후와 세기>. 아핏차퐁 위세라세타쿤 감독의 영화이며, 세계적으로 그를 작가의 지위에 오르게 한 주요한 작품 중 하나이다. 작가 영화이므로 감내하고 봐야하는 어떤 자세 같은게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유독 그것이 더 강하게 존재한다.
우선 이 영화에는 스토리텔링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스토리텔링 자체에는 아예 무관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흐름과 리듬 자체가 존재하고, 영화는 아예 그것에 모든 걸 내맡기는 것 같다. 무슨 남자가 여자 간호사 같은 사람에게 와서 고백을 하고 하소연을 하는데 굉장히 찌질해보이고, 여자가 맺는 관계들은 어딘지 모르게 동떨어진 비애극으로 느껴진다. 거의 최종적으로 다다르는 지점에서의 몇개의 컷들이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가동이 중단된 공장 안의 모습,그리고 그 공장의 어떤 흡입구? 같은 곳으로 빨려들어가는 기이한 증기. 또 절망하는 어머니와 공원 벤치의 연인의 모습이다. 또 태국 왕세자부부의 동상이라고 생각되는 동상도. 아. 그 전에 한 연인이 키스를 하고 포옹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자가 보여주는 사진들 각각이 몽타주처럼 20세기 태국의 절망적 풍경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공원에서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에어로빅을 하고 있다. 뭥미? 그러나 인상적이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이 '시간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일반적인 극영화와는 전혀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고 스토리텔링도 미미해서 참고 견디며 보기 어려운 영화이므로 남다른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